국민권익위원회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의 핵심 내용 중 하나인 ‘3(식사)·5(선물)·10만원(경조사비)’ 기준을 졸속으로 지정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17일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청탁금지법 시행령의 경제효과 분석에 이용한 연구보고서가 시간에 쫓겨 짜깁기로 만들어진 졸속보고서”라고 주장했다.
채 의원에 따르면 권익위는 지난해 8월 ‘청탁금지법 적정 가액기준 계산 및 경제효과 분석’이라는 연구용역을 계약금 1500만원에 현대경제연구원에 맡겼다.
문제는 해당 연구용역의 계약기간을 작년 평균 연구용역 기간인 124일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50일로 설정했다는 점이다. 또 해당 용역계약은 경쟁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으로 체결됐다. 권익위가 작년 한 해 동안 수의계약으로 체결한 연구용역은 이 건이 유일했다.
이에 따라 권익위가 가액 기준 설정을 위한 연구용역을 졸속으로 추진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무엇보다 50일은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가액기준을 설정하는데 지나치게 짧은 기간이란 주장이다.
특히 단기간에 연구용역을 수행하다 보니 보고서 내용도 부실했다. 채 의원은 “현대경제연구원의 보고서는 용역수행 3년 전인 2012년에 해당 연구소에서 발간한 ‘부패와 경제성장’의 최대 80% 가량을 그대로 발췌한 보고서”라며 “해당 보고서는 문장단위로 출처를 표시한다는 기본적인 위탁용역 연구윤리도 지키지 않았다. 권익위의 짧은 연구기간 설정으로 인해 시간에 쫓겨 짜깁기로 보고서를 완성해야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권익위는 연구업체가 전문성을 갖췄고 김영란법 사안이 시급하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권익위의 사안이 시급했다는 해명은 납득이 가지 않는 점이 많다. 권익위가 현대경제연구원으로부터 김영란법 용역보고를 받은 것은 작년 9월 말이지만 3·5·10만원 기준을 입법예고한 것은 지난 5월이다. 권익위는 약 8개월 경제에 영향을 최소화할수 있는 가액기준을 연구할 수 있었는데도 이에 대해 다른 연구용역을 발주하지 않았다.
또 모든 기준금액을 5만원으로 하자는 현대경제연구원의 보고서 결론이나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법제연구원의 10만원으로 기준을 통일하자는 의견도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이에 따라 권익위가 사실상 3·5·10만원으로 기준을 정해놓고 연구기관에는 요식행위로 연구용역을 발주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공무원윤리강령에 규정된 3(식사)·5(경조사비)10만원(화환)을 도입하기로 사실상 결정한 상황에서 형식적으로 연구용역 절차만 거쳤다는 것이다.
특히 공무원윤리강령 기준은 지난 2003년에 만들어져 13년이나 지났는데도 물가상승률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채 이 기준을 그대로 가져온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기본적으로 경제행위를 금액에 따라 규제하는 것은 물가상승률 등 여러 문제가 수반되는데다 행위 전반을 위축시킬 수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며 “불가피하게 이런 방식을 택할 경우엔 면밀하게 따져보고 기준을 설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열린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국회의원들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권익위의 현실과 동떨어진 김영란법 유권해석이나 미흡한 시행준비에 대해 질타했다.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1일에서야 김영란법 대응을 위한 조직신설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아는데 이는 법 시행 전에 마무리했어야 하는 것”이라며 “국민들은 법 시행후 너무나 혼란스러워 하는데 이런 대응이 미진하다보니 총리가 안보인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은 “교육현장에서 카네이션·캔커피 금지법으로 불리고 있다”고 지적하며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직종에 대해 더욱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고 질타했다. 김 의원은 “선생님에게 아이들이 카네이션을 주지 못하는 기준을 적용하려면 같은 수준의 도덕성이 요구되는 모든 직종에 적용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 규정을 수정해야
[우제윤 기자 / 추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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