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퇴임한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만큼이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이는 그의 아내 미셸 오바마였다. 미셸은 여성이자 흑인으로서 늘 당당하고 유쾌한 모습을 보였고 이에 미국 국민들은 찬사를 보냈다. 단순히 내조의 역할을 넘어 백악관의 아이콘이 된 그를 보면서 우리 국민들도 상념에 젖어들었다. 배우자가 없는 대통령이 취임 이후 4년 간 '소통 부재'로 정치·사회와 갈등을 빚었고 끝내 최순실 게이트로 자리에서 물러나야할 위기까지 겪고 있는 점에서 더욱 그랬다. 대통령의 부인, 즉 영부인은 그래서 중요하다. 지금까지 한국의 퍼스트레이디(first lady)는 대통령 남편의 내조를 조용히 맡아왔다. 이제는 변하고 있다. 남편보다 어떤 때는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여성만으로서의 전문영역으로 역할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퍼스트레이디'에서 '정치적 동반자'로 나아가고 있는 셈이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아내 김정숙(63) 여사가 대표적이다. 김 여사는 지난 9월 추석부터 홀로 매주 화~수요일 1박2일 일정으로 서울에서 KTX를 타고 광주를 방문해왔다. 그곳에서 공부방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하고 나눔장터를 운영하는 사람들을 만나 고충을 들었다. 남편이 챙기지 못하는 일정들을 여성 특유의 섬세함을 내세워 챙긴 것이다. 대중목욕탕을 서스럼 없이 찾고 여성계·문화계·종교계 인사를 고루 만나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들었다. 덕분에 '호남 민심을 얻지 못하면 대통령이 되기 어렵다'는 얘기도 이제 문 전 대표 측에서는 옛말이 됐다. 문 전 대표는 호남에서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문 전 대표는 김 여사에 대해 "딸이자 아내이자 엄마, 할머니로서 1인 4역을 한다"고 표현했다.
주변에서는 매주 서울과 광주를 오가는 일정이 힘들다며 말렸다고 한다. 그러나 김 여사가 고집을 꺾지 않았다. 문 전 대표 측 관계자는 "김 여사가 4년 전 대선 패배 등 호남에 대한 미안함에다 책임감, 고마움 등 마음의 빚 같은 것이 있어서 갚고 싶은 생각에 인사하러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김 여사는 설 연휴에 광주 등 호남 지역은 물론 전국 곳곳을 돌면서 문 전 대표에 대한 지지를 호소할 계획이다.
2012년 대선 때 김 여사는 '유쾌한 정숙씨'라는 별명을 얻었다. 항상 밝은 얼굴로 현장의 활력소가 됐기 때문이다. 문 전 대표와 김 여사는 경희대 1년 선후배 사이로 1973년 소개팅으로 만났다. 특별한 인연으로 연결되지 않다가 1년 뒤 문 전 대표가 유신반대 학생시위에 참여했다가 현장에서 쓰러졌을 때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준 이가 우연히도 김 여사였다. 우연이 필연으로 이어진 셈이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아내 유순택(73) 여사는 외교관 남편을 따라 40여년을 챙겨왔다. 유 여사는 반 전 총장과 함께 귀국 후 인천국제공항 환영행사와 현충원 참배·고향 방문 일정에 참여했다. 이후 외부일정은 자제하면서 반 전 총장의 건강을 챙기고 있다. 반 전 총장은 "스트레스가 쌓이면 아내와 대화를 통해 하나씩 풀어낸다"고 털어놨다.
유 여사는 반 전 총장과 함께 전 세계를 오가며 수백 번 넘게 짐을 싸고 풀어야 했다. 2007년 유엔 사무총장 부인으로 있으면서 아프리카 등 오지에도 함께 자주 출장을 다녔다. 그곳에서 현지인들을 도와주는 유엔의 여성쉼터, 병원 등을 방문해 어려움을 듣고 위로 하기도 했다. 유 여사는 누군가가 자신을 두고 '세계의 퍼스트 레이디'라고 말하자 "몸이 막 오그라들어요. 그런 말 들을 자격이 안된다"며 손사래를 치기도 했다. 반 전 총장과 유 여사는 충주여고와 충주고 학생회장단 간부로 교류하며 인연을 쌓았고 1971년 결혼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의 아내 김미경(54) 여사(서울대 의대 교수)는 지난해부터 남편의 대권행보를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이번 설 연휴에는 남편과 함께 온라인 생중계 방송에 출연해 유권자들과 만난다. 김 여사는 지난해에는 딸 설희 씨와 함께 촛불집회에 참석했고 지난 8일에는 친정이 있는 전남 여수에서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김 여사는 처음에는 조용히 본인의 길을 걸었지만 정치인 아내로 4년을 보내면서 외부활동이 잦아졌다. 지난해 20대 총선에서 안 전 대표를 대신해 지역구인 서울 노원병 선거운동을 전담했을 정도다. 김 여사는 전남 순천 출신이지만 여수에서 지냈고 현재 부모님도 여수에 살고 있다. 덕분에 안 전 대표는 '호남 사위'라고 자주 언급되기도 한다. 김 여사는 서울대 본과 3학년 때 교내 진료봉사서클에서 1년 선배인 안 전 대표를 처음 만나 캠퍼스 커플로 발전했다. 그때부터 '철수 형'이라고 부르면서 같이 공부하고 책과 영화 등에 대해 밤새 이야기를 나누면서 연애했다. 두 사람은 1988년 결혼했다.
안희정 충남지사의 아내 민주원(53) 여사는 남편의 '영원한 동반자'로 불린다. 안 지사는 아내를 두고 "저의 두려움, 갈등, 분노, 사랑을 다 알고 받아주는 사람"이라고 종종 표현한다. 민 여사는 안 지사가 민주화 운동으로 옥고를 치르는 등 힘든 시기를 보낼 때 곁에서서 늘 응원했던 동지같은 존재다.
화통한 성격의 민 여사는 언론과의 소통을 통해 남편의 매력을 알리고 설 연휴 전후로는 대선운동과 도정을 병행해야하는 남편을 대신해 지역을 찾아다닐 계획이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과거 '안희정을 위한 변명'이라는 정치 브리핑에서 "(안 지사가) 노무현 후보캠프 대선자금 모금의 모든 책임을 지고 감옥생활을 시작했는데 그의 부인은 학생 시절 면회 다니던 그 구치소에 다시 면회를 다녀야 했다"며 "그의 아내와 아이들은 정신과 치료까지 받아야할 정도로 우을증에 시달렸다"며 안타까워한 바 있다.
고려대 83학번 동기인 두 사람은 대학교 1학년때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났다. 이듬해 민 여사가 재학중인 교육학과 수업을 안 지사가 신청했다가 다시 연결됐다. 두 사람은 1989년 결혼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의 아내 김혜경(50) 여사는 낮은 자세로 자원봉사활동을 하면서 남편의 대선운동을 돕고 있다. 김 여사는 남편이 성남시장임을 밝히지 않고 자원봉사에 나섰다가 한 누리꾼에 의해 외부에 알려지게 되는 일화도 있었다. 김 여사가 세월호 참사 당시 팽목항에 홀로 내려가서 묵묵히 자원봉사활동 했던 사진이 뒤늦게 인터넷에 올라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 여사는 이 시장의 건강을 챙기고 넥타이를 골라줄 정도로 세심하다.
유승민 바른정당
[강계만 기자 / 김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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