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지난달 31일 대선 불출마를 전격 선언했다. 이로써 여권에선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 오세훈 전 서울시장, 원 지사 등 3명이 야권에선 박원순 서울시장이 대권 행보를 중단했다. 이들의 '불출마 정치'가 향후 대선 판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정치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원 지사는 이날 바른정당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바른정당 소속 정치인이자 지방자치단체장의 한 사람으로서 대한민국을 이끌고 가야 할 중심축인 건강한 보수를 바로 세우는 데 힘을 보태고자 한다"며 "대한민국이 현재의 경제·안보 위기를 지혜롭게 잘 대처하고 국민통합을 위한 정치가 되도록 나름 역할을 다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로써 바른정당 대권후보 경선은 유승민·남경필의 2파전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불출마 선언의 이유는 다름아닌 지지율 부진이다. '벚꽃대선'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좀처럼 끌리지 않는 대중의 관심이 객관적 수치로 지속되자 이들은 불출마 카드를 꺼내들었다. 한때 대선 주자 1위를 달리기도 했던 김무성 의원은 지난해 중반 이후 꾸준히 하락하며 결국 5% 벽을 극복하지 못했다. 오 전 시장은 원외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여권내 2~3위를 달렸으나 결국 4%대의 지지율 박스에 갇힌 채 좀처럼 반등하지 못했다. 박 시장 역시 5~7%대의 지지율을 오르내리다 5% 벽을 넘지못하자 불출마를 결심했다. 이르면 5월께 대선이 치러질 가운데 5% 지지율을 뛰어넘지 못한 점이 이러한 결단의 가장 큰 원인으로 손꼽힌다.
하지만 이들의 중도포기 이면엔 나름대로의 정치적 계산도 깔려있다.
원희룡, 박원순 등 차기 주자권으로 분류되는 주자들에겐 당장 대선 강행군을 펼치기 보단 대승적 양보와 희생을 통해 차기를 도모하는 편이 이득일 수 있다. 제편 갉아먹기식 경쟁에 몰두하느니 진영 전체를 아우르는 중재자 내지 교두보 역할을 자처하며 운신의 폭도 넓힐 수 있다. 사실상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인 셈이다.
반면 김무성, 오세훈 등 거물급 대선주자들은 '실용적 불출마'를 선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7선 의원인 김 의원은 대권을 포기하는 대신 개헌을 통한 내각형 총리를 노리거나 중도를 아우르는 빅텐트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이어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 전 시장 역시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을 중심으로 범여권 교통정리에 나서며 이번 대선에서 본인의 입지를 굳혀나가고 있다.
이렇다보니 마음을 비운 잠룡들의 대선 역할론도 주목받고 있다. 이들이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등을 돌리면 그 파괴력은 무시못할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대선이 가까워짐에 따라 유력후보의 불출마 내지 후보 단일화는 대선 결과를 뒤바꿀 수 있는 변수가 될 전망이다.
대선 잠룡들의 불출마가 이어짐에 따라 대선 완주 의지를 표명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대선 완주'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귀국후 반 전 총장의 지지율이 내리막길을 이어가며 정치권 일각에선 이러다 불출마를 선언할 수 있을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최영일 공공소통전략
[추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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