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전 쿠알라룸프르 도심 외곽에 위치한 말레이시아 화학청 과학수사국. 6층짜리 콘크리트 건물 위로 까마귀가 연신 날아들며 '까악 까악' 울어댔다.
질문을 쏟아내는 취재진에게 화학국 근무자들은 굳은 표정으로 '노 코멘트'를 반복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사건의 무게감이 느껴졌다.
수차례 전화 요청 끝에 수사국 앞마당에서 김정남 부검샘플 화학조사를 총괄하고 있는 코넬리아 차리토 시리코르드 법의학 부장을 만날 수 있었다. 에메랄드색 이슬람 복장을 입은 시리코르드 부장은 유창한 영어로 "우리가 지금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우리는 독극물 성분에 대한 보고서를 쓸 뿐"이라며 "밤새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위층 압력이 있을 수 있냐는 질문에는 "우리 과학 수사국은 정치적으로 어느쪽에도 치우치지 않은(impartial) 곳"이라며 "그런 압박이 없고, 있다 해도 신경쓰지 않는다. 사건 하나하나가 모두 중요하기 때문에 최선을 다한다"고 강조했다. 결과가 언제쯤 나오냐고 묻자 "필요하다면 주말에도 밤샘 작업을 하겠지만 화학이라는 게 어려워 언제 결과가 나올지 말해줄 수 없다"고 덧붙였다.
북한 대사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5일 김정남 시신에 대한 부검을 실시한 말레이시아 당국은 오는 주말께 김정남 사인에 대한 분석 결과를 공개할 것으로 전망된다. 말레이시아 현지 소식통은 "보통 샘플 분석에만 최소 이틀에서 일주일이 걸리는데 이슬람 주일인 금요일을 넘긴 뒤인 주말에 발표될 공산이 크다"고 전했다.
김정남이 독극물에 의해 죽었는지, 어떤 독극물이 어떤 방식으로 투입됐는지는 그의 암살을 둘러싼 배후 세력을 밝히는데 중요한 단서로 작용한다.
도주 중인 남성 용의자 4명의 행방을 찾는 것 못지 않게 김정남의 사인을 밝히는게 중요한 이유다.
현지에선 김정남 독살설에 무게가 실리는 가운데, 주사나 독침 보다는 독극물이 묻은 천이나 스프레이 공격 가능성이 더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김정남은 지난 13일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여성 2명에 접촉된 직후 어지럼증, 두통 등 신체 이상을 호소했고 병원에 옮겨지던 중 숨졌다. 일간 뉴스트레이츠타임스는 부검 과정을 아는 소식통을 인용해 김정남 신체에 아무런 주사 자국이 없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독극물 종류에 대해서는 추측만이 무성하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고용된 암살팀이 김정남을 독살했으며 피자마씨의 독성물질인 리신 혹은 복어독이 사용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말레이 현지 성주일보는 이날 베트남 여권을 소지한 도안 티 흐엉(29)의 핸드백 안에서 독약이 담긴 화장품 병을 발견했으며 김정남 독살에 사용됐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날 오후 기자는 김정남이 숨진채 처음으로 이송됐던 푸트라자야 병원을 찾아갔다. 응급실에 앉아서 차례를 기다리는 시민들은 김정남 피살 사실을 1면에 다룬 현지 신문을 읽고 있었다. 병원서 만난 30대 여성 마지야 씨는 "김정남 기사를 읽고 있었는데 그가 이 병원에 처음 들렀던 것은 모르고 있었다"며 "말레이시아에서 국제적으로 이슈가 될만한 큰 사건이 벌어져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남 암살 사건에 대해 말레이시아 뿐 아니라 인도네시아, 베트남 당국도 공조수사에 나서기로 했다. 체포된 용의자들이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국적으로 밝혀져 3국간 긴밀한 협조가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또 말레이시아 당국은 이번 사건의 핵심 용의자 4명이 국외
[쿠알라룸프르 = 박태인 기자 / 서울 = 전범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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