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대통령후보 선출을 위한 첫 번째 전국 순회경선이 열린 27일 광주여대 유니버시아드 체육관 앞은 행사 시작 2시간 전인 오후 12시부터 호남 각지에서 몰려온 대의원들과 각 후보 지지자들의 차량들이 뒤엉키면서 큰 혼잡을 빚었다. 하지만 민주당 경선이 곧 대선본선이라는 자부심과 정권교체에 대한 뜨거운 열기로 참석자들의 표정은 밝았다.
문재인·안희정·이재명·최성 등 각 후보의 지지자들은 체육관 안팎에 무리지어 지지후보의 이름을 연호하며 한껏 분위기를 달궜다. 선두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 측 지지자들은 지지문구가 적힌 파랑색 카드를 흔들었고, 안희정 충남지사 측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연상케하는 노랑색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노랑 막대풍선을 두들기며 흥을 돋웠다. 이재명 성남시장 측은 네덜란드 축구팀을 연상시키는 오랜지색 티셔츠를 맞춰입고 나왔다. 일단 목소리 크기로는 이 지사 측의 응원이 가장 뜨거웠다.
이날 현장투표 대상은 1949명의 호남 대의원들이었지만, 후보별 지지자들이 몰리면서 1만여석의 체육관은 무대가 설치된 방향의 좌석을 제외하곤 입추의 여지 없이 가득찼다. 지지자들의 환호, 웅장한 음악, 300여명의 취재진들까지 몰리면서 경선 현장투표장은 그야말로 록콘서트장을 방불케했다.
이날 호남 경선은 △충청(29일) △영남(31일) △수도권·강원·제주(4월3일)로 이어지는 4대 권역별 전국 순회경선의 첫 순서다. 야권 심장부인 광주에서의 투표 결과는 향후 경선 흐름을 결정짓는 '바로미터'라는 점에서 후보자들은 사활을 건 승부를 펼쳤다. 호남경선은 일단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문 전 대표의 1위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는 가운데, 문 전 대표가 과반 득표를 넘어설지가 관전포인트다. 아울러 안 지사와 이 시장 간 2위 다툼도 주목해야할 대목으로 지목됐다.
이번 후보 선출방식은 100% 완전국민경선제로, 민주당은 앞서 지난 22일 실시한 투표소 투표 중 호남지역표와 25∼26일 진행된 자동응답시스템(ARS) 투표, 이날 이뤄진 현장투표를 합산해 27일 오후 6시 40분께 후보별 득표결과를 발표한다. 이미 32만여명의 호남지역 선거인단은 ARS 등으로 투표를 실시한 상황이다. 호남선거인단 중 일반국민과 일반당원은 모두 27만4934명이며, 권리당원은 5만1532명이다.
이날 현장투표 전 실시된 정견발표에서 각 후보들은 호남의 선택을 받기 위한 사자후를 토했다. 우선 선두주자인 문 전 대표는 '압도적 승리론'과 '준비된 대통령론'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문 전 대표는 "이번 대선은 적폐세력의 집권연장이냐,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이냐의 갈림길이 되는 역사적인 선거"라며 "완벽하게, 압도적으로 승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남은 43일간 어떤 변수도 있어선 안된다. 검증 한방에 무너질 수도 있는 만큼 검증 안 된 후보로는 위험하다"면서 "검증이 끝난 후보, 도덕성에 흠결 없는 후보가 누구냐"고 지지를 호소했다.
문 전 대표는 "우리가 기댈 것은 적폐세력과 손잡는 다수의석이 아니다. 국민들보다 앞서서 달려가는 과격함도 아니다"며 대연정론의 안 지사와 기본소득제·재벌체제해체를 주장하는 이 시장을 몰아세우기도 했다.
안 지사는 자신이야말로 김대중·노무현의 진정한 계승자라는 점을 강조하며 '통합된 대한민국'을 일궈내겠다고 밝혔다. 안 지사는 "기존의 낡은 진보·보수 진형, 낡은 이념의 이 이념의 정치구도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자신을 향한 우클릭 비판에 대해서도 적극 반박했다. 안 지사는 "최근 제가 우클릭한다고 걱정하는데 우클릭 아니다. 이 길은 김대중과 노무현 그 미완의 역사를 완성하기 위한 민주당의 '뉴클릭'"이라며 "이 길을 가야만 우리 민주당은 확실한 집권주도세력이 될 수 있고, 대한민국 정쟁 역사 끝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시장은 공정한 대한민국을 강조했다. 그는 "부패한 기득권을 혁파하고 국민에게 희망을 만들어줘야 한다. 싸우지 않으면 청산할 수 없고 청산하지 못하면 비뚤어진 나라 바꿀수 없다"면서 "일제의 기득권으로부터 자유롭고 공정한 나라 만들려고 평생 기득권과 싸워온 이재명이 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한달에 200만원을 못 버는 노동자가 900만 명이나 되는 나라, 절망한 청년들이 헬조선 탈출을 꿈꾸는 출산을 거부하는 이런 나라, 이제 끝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첫번째 경선개최로 광주시는 정권교체의 열망이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매일경제 기자가 27일 버스터미널, 백화점, 카페, 식당가에서 만난 시민들은 한결같이 "정권교체가 제일 중요한 과제"라고 했다. 정권교체를 위해서라면 후보에 대한 호불호에 얽매이지 않게 될만한 사람이 되도록 밀겠다는 말을 하는 시민들이 많았다. 지난 2002년 민주당 경선 당시 '노풍'(盧風·노무현 바람)의 진앙지였던 광주는 주요 선거 때마다 '전략적 투표' 성향을 보여왔다.
일단 문 전 대표가 말하는 '문재인 대세론'의 실제적인 기류가 감지됐다. 문 전 대표를 좋아하진 않더라도 "이번엔 문재인 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하는 시민들도 많았다. 광주 광천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직장인 이동남(47)씨는 "ARS투표에 참여했다. 적폐청산을 가장 잘 할 것 같아 문재인을 찍었다"고 했다. 이 씨는 이어 "호남홀대론이 있지만 그정도 약점은 어느 정치인이나 다 있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하며, "안희정 지사는 토론회를 보니 정책이 모호해 준비가 덜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광주종합버스터미널 지하 식당가에서 2대째 김치찌게집을 하고 있는 이정은(51)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너무 안됐다. 그래서 문재인이 이번엔 돼야 한다"면서 "안희정과 이재명은 더 준비가 필요한 것 같다"고 했다. 다만 "식당을 찾는 손님들 중에선 문재인이냐 안철수냐
문 전 대표를 좋아하지 않지만 지지한다는 사람도 적잖았다. 택시기사 임종팔(58)씨는 "문재인이 호남에 이것저것 잘못한 게 많다"고 운을 뗐지만, "좋아하진 않지만 그래도 이번엔 문재인을 찍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광주 = 오수현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