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 도착해 장진호 전투 기념비에 헌화하며 미국 방문 일정을 시작했다. 6.25 전쟁당시 북한 개마고원 저수지인 장진호에서 벌어진 전투는 미국 해병 1사단의 가장 쓰라운 패배였지만, 그들의 끈질긴 저항이 성공적인 흥남철수를 이끌어냈다. 피난민 아들인 문 대통령은 "장진호 용사와 흥남철수작전이 없었다면 제 삶은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고 오늘의 저도 없었을 것"이라며 한미 혈맹관계를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재계 총수와 중소기업인 등 방미 경제인단 52명과 차담회를 가진데 이어 미국 상공회의소에서 주최한 한미 비즈니스 서밋에서 "한미 경제협력이 상호간 교역과 투자 확대를 넘어 세계시장을 함께 개척하는 '전략적 경제동반자'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전기차, 스마트가전뿐만 아니라 플랜트와 엔지니어링 기술 등 상호 협력가능한 분야도 꼽았다.
문 대통령은 한미경제인들에게 "북핵문제가 해결되면 북한에 투자기회가 제공될 수 있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기내 청와대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한미FTA는 양국 이익에 균형이 잘 맞춰져 있고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29일~30일(현지시간) 1박 2일 동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부부동반 환영만찬, 단독-확대 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 등 예정된 일정을 소화한다.
문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에 가장 빠른 취임 51일 만에 미국 대통령과 마주하게 된다. 인수위원회없이 새 정부가 출범하느라 국내 상황이 어수선한 가운데 이례적으로 신속히 추진된 미국 방문이다. 문 대통령은 북핵 및, 한반드 사드배치, 한미FTA 재협상과 경제협력 등 산적한 현안을 협상테이블에 올려놓지만, 이번 방미 목적은 무엇보다 든든한 한미 신뢰관계 회복에 있다는 관측이다. 독일 함부르크에서 7월 7일~8일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서 양국 정상이 만날 기회가 있지만 그 전에 문 대통령은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는 한미 정상회담 의미에 대해 "양국 신뢰와 연대, 우의를 구축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못박았다. 앞으로 한미 정상 모두 적어도 4년이상 임기를 같이하는 상황에서 서로에게 동맹에서 혈맹을 넘어 '위대한 동반자'관계를 이어가겠다는 뜻이다.
재계에서도 문 대통령의 방미에 맞춰 대규모 선물 보따리를 풀어놨다. 이날 삼성전자의 미국 공장 설립 계약 체결을 비롯해 SK그룹과 두산그룹 등도 미국 기업과 양해각서(MOU) 등을 쏟아냈다. 대한상의에 따르면 문 대통령에 방미에 맞춰 미국을 찾은 경제인단 52개 기업이 밝힌 향후 5년간 투자·구매 금액은 총 352억달러(약 40조1500억원)에 달한다. 연 평균 70억달러 수준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이들 기업들의 5년간의 투자규모는 약 128억달러(약 14조6000억원), 이들 기업이 밝힌 원자재 및 항공기 등 구매 규모는 224억달러 수준이다.
방미 경제인단에 이름을 올린 중소기업들은 첨단 신산업 시장을 중심으로 투자 계획을 밝혔다.
한편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는 한미 FTA 재협상 문제가 집중적으로 거론할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이날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열린 컨퍼런스콜에서 "정상회담 핵심 의제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가 아니라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개선 등 무역불균형 문제"라고 밝혔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에 대한 미국의 무역적자 문제를 중요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는 소재로 본다"면서 "한국과의 무역이 불균형 상태에 있다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판단"이라고 전했다.
구체적으로는 미국산 자동차 한국 수출, 한국을 통한 중국산 철강의 미국 유입 등을 거론했다. 이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에서 미국 자동차 판매에 장벽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으며 과도한 양의 중국산 철강이 한국을 통해 미국으로 들어온다고 본다"면서 "이런 문제를 정상회담에서 솔직하게 얘기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드 논란에 대해서는 "이미 엄청나게 잉크를 엎질러 놓았다"면서 정상회담에서 거론하기는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과 강경화 장관의 발언을 사례로 들어 "사드 배치를 위한 한국 내 절차가 사드 배치를 번복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화론에 대해서도 열린 시각을 드러냈다. 이 관계자는 "조건부 대화는 문 대통령 뿐만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이기도 하다"면서 "양국 정상의 대북정책 기조는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내년 평창올림픽 남북 단일대표팀 구성 아이디어에 대해서도 "그것이 대북압박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정상회담에서 대북정책에 대해 논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 이진명 기자 / 강계만 기자 / 서울 = 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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