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중 독일 베를린에서 열릴 예정인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 첫 한중정상회담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두고 회담 전부터 양국 정상이 정면 충돌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서다. 문 대통령과 시 주석은 각각 한미정상회담과 언론 인터뷰에서 사드 문제에서 첨예한 인식 차를 드러내 한중 정상 간 첫 만남이 매우 껄끄러운 자리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5일 다자간 외교무대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처음 참석하기 위해 4박 6일 일정으로 독일 방문길에 오른다. 문 대통령은 베를린에서 시 주석과 만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 정상 간 첫 만남이 예정됐지만 분위기는 우호적이지 않다. 앞서 시 주석은 한미정상회담 직후인 지난 2일 타스통신과 인터뷰하면서 "사드 한국 배치는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역내 국가들의 전략적 안보 이익에 심각한 해를 끼친다"며 "(사드 배치에 대해) 중국은 이미 단호한 항의와 심각한 우려를 표시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번 한중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의 입장 변화를 기대하긴 힘든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문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에서 거둔 외교·안보 분야 성과가 한중정상회담에선 정작 족쇄가 되는 딜레마에 처했다고 입을 모은다. 문 대통령은 한미동맹의 균열을 의심하는 미국 조야의 우려를 일소하기 위해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사드 배치에 대해 전향적인 입장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방미 기간 중 미국 상·하원 지도부와 만난 자리에서 "혹시라도 저나 새 정부가 사드 배치를 번복할 의사를 가지고 (환경영향평가) 절차를 갖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은 버려도 좋다"고 했다. 이는 사실상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화하는 발언으로, 이후 열린 정상회담에서 사드는 의제로 다뤄지지 않았다. 이는 균열 조짐을 보이던 한미동맹을 봉합하는 것은 물론, 향후 대북정책에서 우리나라의 주도권을 미국이 인정하는 내용이 정상 공동성명에 담기는 성과로 이어졌다.
하지만 첫 한중정상회담을 일주일 여 앞둔 상황에서 사드 배치에 쐐기를 박는 발언이 중국과의 협상의 폭을 좁혀놓은 측면도 있다. 문재인정부는 출범 후 사드 보고 누락 사건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고, 환경영향평가를 재실시하기로 결정하면서 빠르게 진행되던 사드 배치 작업에 제동을 걸었다. 한미정상회담 전 불거진 한미동맹 균열 논란은 청와대의 이 같은 조치 때문이었다. 이는 박근혜정부가 중국 측에 전혀 설명 없이 사드 배치를 전격 발표하면서 무시당했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중국 측을 달래기 위한 고도의 외교적 움직임으로 보는 시각이 대체적이었다. 이를 위해선 한동안 사드 배치 여부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NCND) 전략적 모호함이 지속돼야 했는데 첫 한미정상회담에서 이 같은 모호함을 유지하긴 쉽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중국의 사드 보복을 강도높게 비판한 점도 시 주석과 만남에는 부담이 될 전망이다.
조정훈 아주대 통일연구소장은 "문 대통령은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우리가 어느 편에 서 있는지를 확실히 했다"면서 "이번 한중정상회담에선 큰 성과를 기대하기 보단, 아시아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강조하는 선에서 마무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중국 정부는 문재인 정부에 상당한 기대를 갖고 출발했지만 사드 철회 가능성이 배제된 상황에서 큰 실망감을 피력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다만 북한이 4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성공을 공식화 점이 한중정상회담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북한이 미국 본토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 만큼 사드 배치가 명분을 확보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조정훈 소장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ICBM 발사 성공에 대한 대책이 공론화될 경우 사드를 배제한 채 양국 정상이 심도있는 대화를 나늘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문 대통령은 이번 방독 기간 중 주요국 정상들과 잇따라 정상회담을 갖고 활발한 다자외교를 펼친다.
문 대통령은 5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과 각각 정상회담을 갖는다. 이어 6일 낮 12시40분(현지시간) 쾨르버 재단 초청으로 한반도 평화구축과 남북관계, 통일 한국 등을 주제로 연설을 준비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극도로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풀고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북한을 비핵화 테이블로 끌어낼 수 있는 '신(新) 베를린 선언'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베를린은 동서독의 장벽을 허물고 통일 독일을 이룬 상징적인 곳인 만큼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에 초점을 둔 문 대통령의 통일구상을 밝힐 최적지로 꼽힌다.
실제로 역대 대통령들은 우리처럼 분단국가였다가 통일된 독일을 찾은 자리에서 통일 구상을 밝힌 바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0년 3월 대규모 대북경제지원과 남북 간 대화 및 특사파견을 제안하는 '베를린 선언'을 했고, 이는 첫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4년 3월 독일 드레스덴에서 남북 주민의 인도적 문제 우선 해결 등을 골자로 한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구상을 밝힌 바 있다.
문 대통령은 6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초청으로 만찬형태의 한미일 정상회담도 갖는다.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문 대통령은 G20 정상회의 기간인 7일 아베 신조 일본총리와 별도의 한일 정상회담도 진행하기로 약속했다.
[강계만 기자 / 오수현 기자 / 박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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