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상대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외교는 유별나다.
기존 외교 프로토콜에 얽매이지 않는 '변칙 외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대남담당 부위원장을 면담한 뒤 "12일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다음주로 예정된 북미정상회담은 끝까지 무슨 돌발변수가 발생할 지 모른다. 이미 한 차례 '정상회담 취소'를 선언하며 북한의 '벼랑끝 전술'(brinkmanship)을 그야말로 벼랑끝까지 몰아 부친 트럼프 대통령이다.
미국 문제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변칙적이긴 하지만 큰 틀에선 2020년 미 대선에서 재선을 위한 타임스케줄에 따라 북한 핵문제를 접근한다고 본다. '세계평화'라는 거대담론 보다는 '대통령 재선'이 트럼프 대통령이 포기하지 못할 '핵심이익'이라는 분석이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41%(CNN조사)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하지만 미국내 상황은 만만치 않다. 러시아 스캔들, 포르노배우와 성추문 등 악재 투성이다. 특히 러시아 공모 의혹을 수사하는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의 칼날이 트럼프 대통령의 목을 향해 있는 상황이다. 에릭 가세티 로스앤젤레스 시장 같은 민주당 후보군들이 벌써 2020년을 준비하고 있다.
당장 11월 미 중간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1차 성적표를 받는다. 그는 12일 미북정상회담이 중간선거의 필승카드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 지지율은 50%를 넘어 섰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 외교'는 어쩌면 한국에게도 기회다. 한반도 전문가 돈 오버도퍼 교수는 그의 저서 '두 개의 한국'(The Two Koreas)에서 한국의 보수-진보, 미국의 민주-공화당 정권 교체 때마다 대북문제를 놓고 엇박자를 보인 것에서 '북핵사태'를 키운 한 원인을 찾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강력한 지지율을 바탕으로 취임 초기에 북한 핵문제를 접근하는 것은 새로운 '시도'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했던 일괄타결(all-in-one)을 위한 준비가 12일 미북정상회담 전 까지는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미국도 북한도 '비핵화'와 '체재보장'을 선물할 준비가 안돼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김영철 부위원장의 뉴욕 면담 이후 양측의 화려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미북은 아직 'But' 외교 상태다. 미국은 북한에 "체재보장은 하겠다. 그러나(But) 비핵화와 관련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북한은 "비핵화 의지는 확고하다. 그러나(But) 단계적으로 풀고 싶다"는 희망을 주고 받았을 뿐이다.
올해 트럼프 대통령의 시간표에는 세가지 'N'이 놓여 있다. North Korea(북한과 회담, 6월), Nobel Prize(노벨상, 10월), November off-year election(중간선거, 11월)이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 유권자에 가장 효과적인 메시지 전달할 수 있는 가시적 성과에 매달릴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미 본토에 실질적인 위협이 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제거가 대표적이다. 양국 정상은 정상회담을 통해 미 중간선거 전 ICBM폐기를 못박아 북한 비핵화의 물꼬를 틀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노벨상을 타고 트럼프 대통령은 수상소감으로 오역 논락을 빚었던 영화 어벤저스의 대사처럼 "We are in the end game now(우리는 이제 마지막 단계에 있다)"고 멋지게 외칠 수도 있다.
그러나 외교전문가들은 "미북 정상회담이 자칫 리얼리티 쇼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회담 내용이 부실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속도 조절'에 나선 것으로 판단된다. 그는 "6월 12일 빅딜이 시작될 것"이라면서도 "이날 사인(sign·서명)을 하지 않을 것이며, 프로세스(process·과정)가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미북정상회담을 프로세스라고 부르며 12일 회담 후에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추가로 만날 가능성을 언급했다. 뒤집어 생각해 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12일 정상회담에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 정치적 리스크가 너무 크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한국외교는 냉철해야 한다. 특히 한국 외교가 주의해야 할 점은 '위시풀 싱킹'(wishful thinking·희망사항)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미북정상회담 장소로 '판문점'이라는 예상이 나왔던 것도 정부 당국자들이 회담장소로 판문점을 강력히 희망했던 위시풀 싱킹이 반영된 결과다. 우리 정부는 미북정상회담 이후 남북미 정상회담, 종전선언을 함께 하는 방안(지난 22일 청와대 발표)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미국 문제 전문가들은 상당부분 한국정부의 희망사항에 불과하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무엇보다 남북미 정상회담으로 트럼프가 전체 그림의 '주연'에서 '조연'으로 비춰지는 걸 원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다. 애초부터 '판문점'이 북미정상회담 장소에서 탈락한 배경이다.
싱가포르에서 ICBM폐기와 종전선언에 관한 향후 계획을 '빅딜의 시작'이라며 발표할 수는 있겠지만 이것이 북핵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 '핵폐기'와 '체재보장'은 다소 추상적인 개념이다. 미국과 북한이 12일에 어떤 합의를 하더라도 구체적인 실행과정에선 수많은 돌출 변수가
[김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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