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달 25일 제출한 6조 7천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이 오늘(23일) 기준으로 국회에서 29일째 논의조차 되지 못한 채 잠들어있습니다.
선거제·개혁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갈등을 봉합하지 못한 여야가 국회 정상화에 난항을 겪으면서 추경안 심사·처리는 하염없이 미뤄지는 모습입니다.
이번 추경안은 미세먼지와 강원 산불, 포항 지진 등 재난 대응 예산 2조 2천억원과 선제적 경기 대응, 민생경제 긴급지원 예산 4조 5천억원으로 구성됐습니다.
추경은 집행이 신속할수록 효과가 높아 '타이밍'이 생명입니다. 이 때문에 정부와 여당은 추경안 심사가 늦어질수록 조바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회 정상화 전망이 어두워지면서 추경안의 운명에도 먹구름이 끼었습니다.
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등 여야 3당 원내대표가 맥주 회동으로 대화의 물꼬를 트는 듯했지만, 한국당이 패스트트랙 사과와 철회 요구를 고수하는 반면 민주당 의원총회에서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이 대세를 이루면서 정국은 다시 경색 분위기입니다.
민주당은 당초 여야 합의로 5월 임시국회를 소집해 27일 정부로부터 추경에 대한 시정연설을 듣고 심사에 착수해, 늦어도 다음 달 12일까지 추경을 처리하는 시간표를 야당에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여야가 접점을 찾지 못해 당장은 시정연설은 물론 전반적인 일정의 그림을 그리는 것조차 어려워 보입니다.
이달 29일에는 20대 국회 3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임기가 종료됩니다. 이때를 넘기면 각 당이 추경을 심사할 예결위원을 다시 구성하느라 시간은 더 지체될 전망입니다.
민주당은 의원총회를 통해 이번 추경안 심사를 마무리할 때까지 예결위원을 교체하지 않기로 결정했으나, 다른 당도 이런 방침을 따라줄지는 미지수입니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정부 들어 편성한 지난 두 번의 추경안과 마찬가지로 이번 추경안 역시 제출부터 본회의 처리까지 한 달을 훌쩍 넘기며 길게 늘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옵니다.
2018년 청년 일자리·위기 지역 대응을 위해 편성된 3조 8천억원 규모의 추경안은 4월 6일 국회에 제출돼 45일 만인 5월 21일에야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2017년 편성된 11조원 규모의 일자리와 서민 생활 안정 추경안 역시 6월 7일 국회 제출부터 7월 22일 본회의 통과까지는 45일이 걸렸습니다.
이는 2000년대 들어 국회 제출부터 처리까지 90일이나 걸린 2008년 추경안 이후 최장 기록이었습니다.
추경안 처리를 위해서는 여야가 일정을 합의해 시정연설, 관련 상임위원회 심사, 예결위 의결, 막판 계수조정 작업을 거쳐 본회의 상정·표결을 해야 합니다.
이런 절차는 아무리 서둘러 진행한다고 해도 일주일 안팎이 걸립니다.
2018년 추경안과 2017년 추경안의 심사 기간은 각각 5일과 8일이었습니다.
이번 추경안의 경우 아직 심사를 언제 시작할 수 있을지도 아직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민주당 예결위 관계자는 "심사에 착수하면 서두를 수 있지만, 아직 시정연설 일정조차 잡지 못한 것이 문제"라며, "우리 당은 추경안을 이달 말까지는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그러려면 이달 안에 시정연설을 하고 심사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심사를 시작한다 해도 '쾌속 진행'이 가능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한국당은 재난 대응 관련 부분만 떼어내는 '분리 추경'을 주장하는 반면, 민주당은 경기 하방 리스크가 있어 경기 대응 추경도 시급한 만큼 이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심사에 착수하더라도 이런 내용으로 여야가 갈등을 빚으면 '중도 파행' 등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경우 심사 기간은 더 길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민주당 관계자는 "강원 산불과 포항 지진 등 재난 예산, 경기 대응 예산 모두 시급히 투입돼야 해 추경 처리가 빨리 이뤄져야 한다"며, "한국당이 국회 정상화에 협조해 심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전날 원내대표·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재해·재난 예산은 예비비를 먼저 쓰면 된다"며, "퍼주기 추경으로 대한민국 경제는 더 어렵다"며 경기 대응 추경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거듭 밝혔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