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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석 "이재명의 민주당, 광주 질문에 답 될 수 없다"…이재명 "우직히 걸어가겠다"

기사입력 2022-07-05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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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석, 이재명·송영길 정조준
이재명, 사실상 전당대회 출마 시사

임종석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이사장(왼쪽)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 / 사진 = MBN, 매일경제
↑ 임종석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이사장(왼쪽)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 / 사진 = MBN, 매일경제

문재인 정부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임종석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이사장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송영길 전 대표를 겨냥해 "염치없는 행동을 보면 화가 난다"고 직격했습니다. 이 의원의 전당대회 출마에 반대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이 의원은 "우직히 걸어가겠다"는 글을 자신의 SNS에 올렸습니다.

임종석 "자신들 아픔 돌보느라 반성도 성찰도 없다"

임종석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이사장 / 사진 = 연합뉴스
↑ 임종석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이사장 / 사진 = 연합뉴스

임 이사장은 오늘(5일) 오전 자신의 SNS에 글을 올려 "기본과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보면 창피함을 느낀다. 같은 식구가 이런 행동을 하면 화가 나고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어디라도 숨고 싶다"며 "대선 이후 민주당 당대표와 대선후보의 행동이 그러했다"고 밝혔습니다.

대선 패배 직후 6·1지방선거에서 총괄선대위원장으로 나선 이재명 의원과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한 송영길 전 대표에 직격탄을 날린 것입니다. 이어 "정작 본인들은 자신들의 아픔을 돌보느라 반성도 성찰도 없다"고 거세게 비판했습니다.

선거 이후 이뤄진 민주당의 평가도 핵심을 피하고 에두르기만 한다면서 "갈등과 분열이 커질까 두려운 것이겠지요"라고 적었습니다. 그러나 평가와 쇄신은 철저히 국민들의 정서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민주당 위기의 본질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통렬한 내부 비판과 반성, 그리고 성찰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전당대회가 그런 장이 되기를 기대한다"며 "'이재명의 민주당'은 광주의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없다. '민주당의 이재명'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고 덧붙였습니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민주당 광주시당을 찾아 "환골탈태하고 각성하는, 혁신하고 유능한 정당이 되겠다"면서 "광주의 6·1지방선거 '37.7%'의 투표율은 민주당에 보내는 시민들의 경고로 받아들인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재명의 민주당'은 이 같은 '경고'에 대한 답이 될 수 없다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이재명 "우직히 걸어가겠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 / 사진 = 매일경제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 / 사진 = 매일경제

이재명 의원도 약 7시간 뒤 자신의 SNS에 '저절로 오는 민주주의는 없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이 의원은 "과거에 매몰돼 서로 헐뜯기보다 미래를 향해 함께 힘을 합쳐야 한다"며 "누군가를 배제하는 뺄셈 정치나 기득권끼리 나눠먹는 패거리 정치와 단절하고, 포용과 화합의 덧셈 정치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사실상 자신에 대한 전당대회 출마 반대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아울러 "정쟁에 매몰되지 않고 오직 민생만 바라보며 주권자의 뜻이 온전히 반영되는 성숙한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한다"면서 "쉽지 않지만 가야할 길이다. 열사님과 여사님의 헌신을 지표 삼아 저도 길 잃지 않고 우직히 걸어가겠다"고 밝혔습니다. 사실상 전당대회 출마 의지를 밝힌 것으로 해석됩니다.

열사님과 여사님은 고 이한열 열사와 고 배은심 여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의원은 "이한열 열사께서 우리 곁을 떠나신지 35년이 흘렀다"며 "우리는 당신들의 피와 눈물과 땀으로 오늘의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굳건히 지켜내는 일은 남겨진 우리 모두의 몫"이라고 언급했습니다.
1987년 7월 9일 열린 이한열 열사 장례식 추모 행렬의 모습 / 사진 = 연합뉴스
↑ 1987년 7월 9일 열린 이한열 열사 장례식 추모 행렬의 모습 / 사진 = 연합뉴스

고 이한열

열사는 전남 화순 출신의 학생운동가입니다. 연세대학교 재학 시절 민주화 시위를 벌이다가 최루탄에 머리를 맞고 1987년 7월 5일 사망했습니다. 이후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상징하는 인물이 됐습니다. 열사가 최루탄에 맞아 쓰러지는 모습을 당시 로이터통신의 정태원 사진기자가 촬영해 널리 알려졌습니다.

[신동규 기자 easternk@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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