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인용 보도시 MBN 유튜브 '나는 정치인이다'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MBN에 있습니다.
진행 : 송주영 MBN 기자
출연 : 이한주 민주연구원장
방송일 : 2025년2월19일(수)
[전문]
○ 앵 커> 여러분 안녕하세요? 송주영입니다. <나는 정치인이다> 이번 시간에는 이재명 대표 30년 지기 정책 멘토로 알려진 분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 민주연구원 이한주 원장님 모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 이한주> 반갑습니다.
○ 앵 커> 조기 대선 가능성도 열리고 있어서 특히 원장님 역할이 더 중요해진 시점 아닌가 싶은데요.
● 이한주> 그렇긴 한데요. 조기 대선보다도 더 중요한 게 현재 정국을 좀 안정시켜야 되잖아요. 염려는 하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실제로는 현재 정부 탄핵이 빨리빨리 정리되고 지난번 광주에서처럼 국민들이 막 분열되잖아요. 이게 오래 가니까요. 그리고 경제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쳐서 빨리 정리를 하고 대선 문제는 그 두 번째로 다들 그럴 거예요. 마음속으로는 걱정을 하지만, 그러나 현재로서 해야 될 거는 조금 다른 거죠. 영어공부가 하고 싶어도 대학 입학시험 먼저 보고 해야 되잖아요?.
○ 앵 커> 20년 지기 정책 멘토라고 설명을 드렸는데 이 설명 마음에 드세요?
● 이한주> 20년은 넘었고요.
○ 앵 커> 아, 30년 지기.
● 이한주> 제가 가천대학의 전신이 경원대학이에요. 85년에 얼떨결에 가게 됐어요. 그 대학에요. 그 대학에 얼떨결에 가게 됐는데 그때 한참 학원 자주화, 학원 민주화가 막 타오를 때인데 신생 대학에 82년 개교를 했으니까. 거기에 시간 강의를 한 번 갔다가 학생들에게 붙들렸죠.
○ 앵 커> 강의 반응이 되게 좋았나 보네요.
● 이한주> 반응이 좋은 게 아니라, 신생 대학이니까. 예컨대 한국경제는 어떻고 뭐 이런 얘기들을 할 사람들이 없었던 것 같아요. 제가 가서 이제 얘기를 했더니 학생들이 그 대학에서 처음 듣는 얘기였고 하니까 학생들이 많이 왔잖아요. 그러다 보니 학생들에게 가까워졌고 가까워지다 보니까 또 지역사회에 관심을 갖잖아요? 애들 거기 사니까. 근데 그 지역에는 성남에는 제가 대학 때부터 좀 따라다녔던 목사님들이 좀 계세요. 성남주민교회를 만드셨던 이해학 목사님도 그중의 한 분이셨거든요. 그래서 그 성남시를 들여다봤더니 황당한 거예요.
○ 앵 커> 왜요?
● 이한주> 성남시에 망경사라는 절이 있는데 아주 낮은 산인데 성남에는 그 산에서 시가 다 보여요. 다 보이는데 당시 85년 당시는 망경산에서 내려다봤더니 이쪽 시가지 끝에서부터 저쪽 시가지 끝까지 지붕이 다 1층이에요. 지붕을 쭉 밟고 갈 수 있을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거예요. 전부 다 루핑이라고 종이 비슷한 데다가 타르를 꽉 묻혀놓은 그런 재질이 있어요. 그게 다 똑같은 지붕이고요. 다시 말하면, 8·10 광주대단지 사건의 여파가 고스란히 남아있었던 지역이에요. 그러니까 지역 문제가 말도 못 하게 산적했더라고요. 보니까. 이미 이해학 목사님, 지금 돌아가셨지만 김준기 교수님, YWCA, YMCA 분들이 무지하게 노력하고 활동하고 계시더라고요.
○ 앵 커> 지역 운동을 하고 계셨구나.
● 이한주> 그렇죠. 지역이 그러니까. 그 무렵에 이제 원주에는 장일순 선생님이 협동조합 운동을 하고 계셨고요. 인명진 목사님이 도시산업선교회에 계셨고 성남에는 이해학 목사님과 김준기 교수님께서는 빈민운동을 하고 계셨잖아요? 성남은 이제 빈민운동, 노동운동, 아동 운동 그다음에 기독교 운동 이런 게 모든 게 다 너무 해야 할 일이 많은 곳이었던 거죠. 그래서 저도 자연스럽게 뭐 대학 다닐 때 기독교 학생 운동을 했었으니까 자연스럽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아는 사람들이 있었고 거기서 자연스럽게 지내다 보니까 그중에 이재명이라는 분이 있었던 거죠.
○ 앵 커> 당시 이재명 대표는 변호사였나요?‘
● 이한주> 제가 처음 만났을 때는 변호사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곧 된 것 같아요. 곧 변호사 되기 전에.
○ 앵 커> 그러면 더 막연한, 뭐라 표현을 해야 될까요. 자연의 모습이라고 해야 되나? 직위나 이런 거 없이 정말 막역하게 만나셨던.
● 이한주> 성남이 아까 말한 대로 한국사회의 여러 가지 모순의 결절점이 가득 쌓여있는 데에요. 생각해보세요. 청계천에 있던 사람들 그냥 쌩으로 집어던진 거 아니에요. 그다음에 거기 그런 사람이 많다 보니까, 또 비슷하게 못사는 사람들이 다 모여든 거예요. 그쪽으로요. 그래서 성남은 못사는 사람들이 가득 찬 거죠. 한국 사회 기층민중(국가나 사회의 바탕을 이루는 피지배계층)들이 거기 다 모여있으니까 사회운동에서 첫 번째 눈은 결국 그분들에게 가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거 아니에요. 그렇죠? 그니까, 사회운동하시는 분들이 많이 모여들었고 그 모여든 분들이 성남에서의 시민사회를 구성하는 중추 세력이 되셨던 거죠. 지금은 이제 많이 변했어요. 분당도 생기고 뭐 성남 집값이 많이 올랐잖아요. 그리고 또 돌아가셨고. 예를 들자면 민선 5기 2010년일 거예요. 민선 5기 직전에 이재명 대표가 성남시장 출마를 하려고 했어요. 민선 5기 그전에도 했어요. 그전에는 연패. 누구나 다 연패, 누구나 축적의 시간이 있잖아요. 이재명 대표도 연패를 했고 2010년 민선 5기를 준비하는 그 과정에서 성남 원로들이 제가 막내였어요. 그 원로들이 '새바람' 이라는 비공식적인 통합체를 조직했어요. 노동운동에 참여하시는 원로, 복지, 종교 등등 경원 대학밖에 없으니까 자연스럽게 학교계 이렇게 해서 이제 모여서 성남시에서 아까 말씀드렸던 다종다양한 사회운동들이 있었잖아요? 이 운동들을 어떻게 정리하고 어떻게 결합하고 이럴 것인가. 이런 고민 자연스럽게 하겠죠. 이재명 대표는 그때 이미 성남시에서 변호사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었고 이미 정치 경력 꽤 있었어요. 그때까지는. 국회의원도 나가봤고 시장도 나가봤고 이런 경력이 있어서 눈치 빠르고 영리한 사람은 금방 깨우쳐있는 상태잖아요? 그래서 새바람 운동에서 '아, 시민사회 후보를 한 번 내자.' 이렇게 했던 거죠. 그래서 이재명으로 단일화를 시켰고 시민사회 쪽에서 선거운동을 하셨죠. 그리고 민주당 후보가 되셨고, 당선의 밑거름이 꽤 많이 됐다고 생각해요. 김미희 의원도 후보로 나섰다가 후보 사퇴를 하면서 단일화를 했던 거죠. 시민사회 공로에요. 성남에는 민노당이라든가 이런 쪽 계열을 지지하시는 분들이 일정한 수가 있어요. 성남에는. 단일화라는 게 큰 효과가 있죠. 그래서 민선 5기에 정치권에 본격적으로 들어왔는데 너무 잘했잖아요. 그다음부터는.
○ 앵 커> 인간 이재명, 정치인 이재명을 짧게 말씀해 주신다면?
● 이한주> 이재명 대표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어요. 우리 때 다 가난했어요. 안 가난한 사람 누가 있겠어요? 학교에서 그 맛없는 빵 나오면 그거 먹겠다고 점심시간에 아우성치고 그랬으니까요. 다 그랬으니까 다 가난했어요. 다. 성남은 유별나게 가난했고, 그중에서 더 유별나게 가난한 집이 이재명 집이었고요. 여러 군데 소개돼서 잘 아시겠지만, 형제들은 많고 부모님들은 소득을 벌어들이는 역량이 현저히 떨어져 있고 애들은 다 학교를 못 다니고 이 정도 상황이었으니까 영리한 소년 이재명 눈에는 그런 것들이 참 여러 가지가 생각이 났을 거예요. 그걸 푸는 데가 일기장이었던 것 같고 일기장에 너무 지나칠 정도로 자세하게 적어놔서 나중에 일기장을 깔 때 까야 되나, 말아야 되나. 너무 자기 심경을 적어놨으니까. 근데 이제 돌이켜서 두 가지 정도로 이재명을 얘기할 수 있는데 그 일기장에 보면 자기가 힘들고 괴로운 사실을 그 어린아이가 다 적었겠죠? 적으면서도 자기 힘들고 외로운 거를 외화 시키려고 노력을 해요. 이게 사회적으로 무슨 문제인가? 이런 생각이 곳곳에 보여요. 그다음에 더 문제는 어떻게 어떻게 해서 이제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해서 고시가 됐잖아요. 결국은. 그 당시에는 많은 인원을 뽑지 않아서 지금보다 훨씬 어려웠어요. 지금하고 상상을 하기 힘들 정도로 어려웠던 시절이었는데 고시가. 근데 이 사람 고시가 됐잖아요. 이재명 대표가. 보통 생각해보세요. 기자님. 집이 굉장히 어려워. 집도 절도 없어. 형제들은 학교도 못가. 밥도 잘 못 먹어. 이런 상태에서 내가 정말 허리띠를 졸라매가면서 해서 고시가 됐어. 기자님은 뭐 하실 것 같아요? 제일 첫 번째 뭐하실 것 같아요?
○ 앵 커> 저는 원 없이 뭘 먹을 것 같아요.
● 이한주> 그렇죠? 그런 거예요. 대개.
○ 앵 커> 아주 기본적인 거. 의식주의 기본적인 걸 생각할 것 같아요.
● 이한주> 그렇죠. 그렇죠. 사람이라면 그런 거잖아요. 그렇죠? 뭐 운동화도 한 켤레 사고 싶고 이재명 대표가 그 바로 밑에 여동생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그 밑에 있는 여동생. 죽었어요. 요구르트 배달하고 그러다가. 학교도 보내고 싶고 그 여동생도 그러고 싶을 거 아니에요. 그리고 부모님 그때는 이재명 대표도 그렇고 우리들도 그렇고 예전엔 다 효자, 효녀였어요. 다. 안 그런 사람이 없었어요. 지금도 뭐 대부분 다 그런데 부모님께 내복이라도 한 벌 사드리고 싶고 거기서 조금 나아가면 쌀 거리도 충분하게 하고 싶고. 변호사니까 조그만 집이라도 하나 마련하고 싶지 않겠어요? 부모님 살, 가족도 살 집을. 그러기 위해서 악착같이 일을 하고 이럴 것 같아요. 저라면 그랬을 것 같아요. 저라면. 그런 게 보통 우리 세대의 또는 우리보다 조금 아래인 세대에 있어서 열심히 공부하려는 노력 그 바탕 그리고 실제로의 행위 이랬을 거예요. 대부분 다. 근데 이재명 대표는 그러는 와중에 이 사람이 뭐를 하냐 그러면 노동상담소, 노동인권센터 이런 것들을 성남에 만들었고요. 그다음에 또 이천인가 거기도 또 하나 만들더라고요. 다니더라고요. 그니까, 자기가 해야 될 노력을 돈벌이에 안 쓰고 사회화시키는 데 쓰는 거잖아요. 또 한 가지는 이런 반성이 있었던 거예요. 내가 겪었던 고통의 이면 속에는 노동자로서의 자기 위치에 대한 생각에 있었고 남들을 위해서 거기에서 그때 느꼈던 깨우침을 사회적으로 자기가 발휘한 거잖아요? 그게 아마 독일 사람들은 그렇게 얘기를 해요. 자신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좀 떼어놔서 사회화시키는 걸 대자적(對自的)인 입장이라고 그래요. 말하자면 성경적인 용어로 하자면 깨달음이 좀 있었던 거죠. 쉽게 말하면. 그리고 고시 공부를 하고 고시 공부해서 붙고 이럴 때 약간의 말하자면 거듭남? 이런 것들이 좀 있었다고 판단이 들어요. 그래서 그런 게 이제 이 사람한테 잊혀지지 않고 그 뒤를 계속 제가 이렇게 보면 계속 밑바닥에 깔려있는 그런 것처럼 보이고요. 그래서 늘 주장하는 내용 중의 하나가 대동세상이라는 얘기들을 자꾸 해요. 대동세상(大同世上)이라는 건 사실은 동양에서는 늘 가지고 있었던 생각들이에요. 동양 사서삼경에 나오는 용어들이에요. 그게 다요. 동양 사람들은 이제 특히, 한국 사람들도 세상의 인간은 다 똑같고, 똑같은 사람들이 같은 지위를 누리면서 살아야 된다. 이런 생각들인 거죠. 그게 이제 실제로는 그러지 않았잖아. 왕도 살고 다 살았지만, 그래도 그런 거를 이상향으로 자꾸 생각했던 거예요. 우리는. 그래서 대동세상이라는 말을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제 약자가 이렇게 상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는 실용적이지가 않을 수가 없어요. 뒤통수를 싸운다 그래요. 어릴 때 싸우잖아요? 그래서 뒤통수를 치는 건 비겁한 일이야. 그러니까, 나는 돌아설 때까지 기다릴 거야. 이럴 수는 없잖아요. 싸울 때는. 그런 것처럼 아주 실용적인 사람이에요.
○ 앵 커> 이재명 대표 측근들을 만나서 들어보면 이재명 대표는 정말 뼛속까지 실용주의자다. 그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정성호 의원을 만나도 그렇고 김영진 의원을 만나도 그렇고. 원장님도 아까 지금 말씀하셨는데 적극 동의하시는 것, 이재명 대표는 실용주의자다?
● 이한주> 저는 뭐 그 얘기를 여러 군데에서 했어요. 실제로 봐왔고요. 그래서 실용이라는 게 명분만 앞세우는 사람 제가 좀 그런 경우에요. 명분을 좋아하고. 이렇게 점잖은 모습을 좋아하고 전 그래요.
○ 앵 커> 이재명 대표랑 되게 잘 맞으시는 지점은 그럼 어떤 부분이 맞을 수 있는 거예요? 서로 보완을 하는 건가요?
● 이한주> 보완적인 측면들이 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뭐 잘 싸우지는 않았지만, 싸우게 된다면 저도 뒤를 돌아보고 있는 사람을 때리면 비겁하다. 라는 얘기가 있다면 저는 일단 멈칫할 것 같아요. 흠칫하고. 비난받으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도 할 것 같은데 그런 점에서 보면 이재명 대표는 실전적이고 실용적이고 이래요. 왜냐하면 그것만 있으면 실용하고 실전적이고 그다음에 또 조금 나쁘게 말하면 꼼수만 있고 이러면 사람들한테 비난받잖아요.
○ 앵 커> 그렇죠.
● 이한주> 목적이 있어야 될 거 아니에요.
○ 앵 커> 그렇죠.
● 이한주> 그게 이제 대동세상과 이재명 대표는 실용. 어디선가 들었을 법한 용어를 계속 사용하더라고요. 실사구시. 그래서 대동세상과 실사구시 이 대표가 마음속 깊이 가지고 그 뒤로 보면 계속 실천하는 것 같아요. 난 사실은 그런 게 참 감동적이고 고마웠던 거죠. 왜냐하면, 나는 못 그랬거든요. 나는 중간에 이제 공부하게 됐고 그래서 교수가 됐고 사실 어쨌든지 교수나 교수는 무슨 말을 하고 무슨 행동을 했든지 간에 이미 사회에서 기득권 그룹이 된 거잖아요? 끝까지 친구들이나 후배들이나 선배들을 보면서 좀 미안한 마음도 있었고 근데 바로 옆에서 이재명 대표가 새로운 방식의 일을 하는 거를 보여준 거죠. 그래서 그게 참 고맙더라고요.
○ 앵 커> 이재명 대표가 실용주의를 내세우는 나름의 목적은 이념이랑 사상을 떠나서 내가 중산층이랑 서민에게 도움이 된다면 어떤 것도 누구와도 타협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 포커스를 좀 맞춰서 실용주의를 하겠다는 취지 잖아요?
● 이한주> 그렇죠. 그런데 본인은 노동자로 출발했기 때문에 본인의 보는 관점이 노동자였던 거죠. 그러다가 이제 민주당에 입당하고 민주당의 가치를 좀 받아들여요. 민주당 강령이라는 게 있어요. 플랫폼. 플랫폼이 있는데 그 플랫폼이 여러 번 바뀌었어요. 당연히 당명도 바뀌고 플랫폼도 바뀌고 뭐 당 대표가 바뀌면 플랫폼 또 바뀌기도 하고 안 바뀌기도 하고 이러잖아요? 그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있어요. 보니까요.
○ 앵 커> 뭔가요?
● 이한주> 민주주의.
○ 앵 커> 그렇죠. 민주당에서는 민주주의를 빼고는 설명할 수가 없죠.
● 이한주> 그렇죠. 또 한 가지가 있어요. 민주주의라는 말도 조금 모호한 측면이 있는 그런 개념인 건데 또 한 가지 모호한 개념이 서민과 중산층이라는 개념이 있어요. 민주당에. 그건 안 없어졌어요. 계속 이어져 온 개념이에요. 그 서민과 중산층 그리고 민주주의. 이것들을 섞어서 와요. 근데 정치학 용어로는 민주주의도 복잡하지만, 서민과 중산층은 더 복잡한 얘기들이잖아요? 그러나 어쨌든, 노동자도 서민과 중산층에 들어가는 사람들이에요. 그러니까, 이재명 대표가 조금 외연을 넓힌 것 같아요. 당에 들어오면서. 그러니까 서민과 아까 얘기한 대동 세상, 실사구시 이게 서민과 중산층하고도 매칭되는 개념이잖아요. 그래서 이재명은 이제 그때부터 나는 민주당 사람이구나. 나는 민주당에 잘 맞는구나. 이제 민주당에 있기를 스스로 마음을 여기다 갖다 놓고 한 거다. 이렇게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