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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제19대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 뒤 국회를 떠나며 시민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2017.5.10 출처:연합뉴스 |
"필요하면 곧바로 워싱턴으로 날아가겠습니다. 베이징과 도쿄에도 가고 여건이 조성되면 평양에도 가겠습니다"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의 한 구절입니다. 얼핏 보면 특별한 것 없는 내용이지만 많은 언론은 도쿄보다 베이징을 먼저 언급한 것에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한 외교 전문가는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한국이 어떤 순서로 한국과 중국, 일본을 언급하느냐를 두고 눈에 불을 켜고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정상과의 전화 통화 순서도 미국-중국-일본 순서였습니다.
실제로 문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중 '한반도 운전자론'을 내세우며 미국과 중국 사이에 균형 외교를 추진했고, 일본과는 끊임없이 마찰을 빚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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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8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를 앞두고 로렐 로지 앞에서 마중 나온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만나고 있다. 2023.8.19 출처:연합뉴스 |
윤석열 전 대통령은 2022년 3월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돼 이튿날인 3월 10일 당선인 신분으로 미국 대통령과 통화를 했습니다. 이후 정상 통화는 일본-영국-호주-인도-베트남(3.23)-중국(3.25) 순서였습니다. 눈에 띄는 건 중국의 순서가 한참 뒤로 밀렸다는 겁니다. 언론은 베트남보다도 늦게 중국과 통화를 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중국으로서는 자존심이 상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겁니다.
윤 대통령은 가치 동맹을 강조하며 한미일 연대를 밀어붙였습니다. 특히 국내 여론의 부담에도 일본과의 관계를 정상화했습니다. 그전까지 언론 등이 관행적으로 한중일로 부르던 순서를 논란을 무릅쓰며 한일중으로 바꿀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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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의힘 김문수(왼쪽부터)·민주노동당 권영국·개혁신당 이준석·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18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SBS 프리즘센터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21대 대선 1차 후보자 토론회 시작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5.5.18 출처:연합뉴스 |
尹 정권의 한미일 연대에 대한 평가는 엇갈립니다. 우선 계엄으로 중도 탄핵당한 정권임에도 한미일 외교 틀을 만든 것만큼은 잘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우리나라 같은 지정학적 위치에서 만약 중국이 저렇게 있고, 러시아가 있고,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는데 미국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나"라며 "이 평화와 번영이 유지될지 생각해 보면 답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국민의힘이 정권을 연장한다면 尹 정부 외교 스탠스를 그대로 이어갈 가능성이 큽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부정적입니다. 윤 대통령의 1차 탄핵소추안에서 "윤 대통령이 가치외교라는 미명하에 지정학적 균형을 도외시한 채 북한·중국·러시아를 적대시하고 일본 중심의 기이한 외교정책을 폈다"는 점을 탄핵 사유로 들 정도입니다. 2차 소추안에서 빠지긴 했지만 1차에 들어 있던 내용이 속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재명 대선 후보는 한미 동맹과 한미일 협력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도 "거기에 완전히 몰빵 올인해서는 안 된다"며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도 중요하기 때문에 잘 관리해야 된다"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모두와 다 잘 지내야 한다는 말은 이상적이지만, 엄혹한 외교 현실에서 현실성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복수의 외교 전문가들은 한일중 순서를 급히 한중일로 바꾸는 것에 대한 우려를 나타냅니다. 새 대통령이 미국 다음에 중국과 통화를 한다면 일본뿐 아니라 미국과의 동맹에 균열이 생길 거라고 우려합니다. 일단 한일중을 유지하면 중국 입장에서 섭섭할 수 있지만, 외교적으로 달랠 수 있을 것으로 봤습니다. 물론 한미일이 금과옥조는 아닙니다. 중국과의 관계가 일본보다 상황에 따라서는 미국보다 앞설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현재 건곤일척의 미중 갈등 상황에서 기존의 입장을 바꾸려면 그만한 명분과 실리가 뒤따라야 합니다. 새 정부가 들어섰으니 전 정부
글이 길었습니다. 문제는 간단합니다. 새 대통령은 취임 첫날 미국 다음에 중국과 통화를 할까요? 아니면 일본과 통화를 할까요? 사뭇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이성식 기자 mods@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