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과학고전으로 꼽히는 `냉동인간`(로버트 에틴거) 원전이 최근 국내에 소개돼 냉동보존술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다. 미국 물리학자 에틴거는 1962년 집필한 `냉동인간`에서 인체 냉동보존술에 관한 근거를 처음 제시하고 냉동인간 사회가 현실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생명공학과 미래 담론에 큰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에틴거 저서가 나온 지 5년이 지난 1967년 미국에서 최초로 인간이 냉동 보존됐고 현재까지 100여 구가 부활을 기다리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과연 냉동인간 부활은 가능할까.
물론 확률은 떨어지지만 기술적으로만 따져보면 가능성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해동 과정에서 얼음이 뭉치고 커지면서 세포를 파괴하는 결빙 현상을 막아주는 해동 기술, 혈액을 대체할 수 있는 기술, 냉동 과정과 보관 중에 인체 여러 곳에 발생한 손상들을 치료할 수 있는 나노기술 등이 모두 있다면 냉동인간을 살릴 가능성은 있다는 것이다.
현재 냉동보관 기술은 미국이 선도하고 있으나 국내 과학자들도 냉동인간을 현실화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가고 있다. 특히 극지연구소 김학준 박사가 메디포스트 휴림바이오셀 가천의과학대와 손잡고 `국가문제해결형 연구사업` 중 하나인 `생물자원 동결보존 기술`을 개발 중이다.
국내 연구팀은 생물을 냉동 보관하는 데 필수적인 `결빙방지 단백질`을 대량 생산하는 기술을 최근 개발했고 `얼린 뒤 다시 해동해 살리는` 확률을 크게 높이는 데 성공했다.
연구팀은 극한의 추위에서 생존하는 극지생물들이 어떻게 얼어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지에 주목하고 있다. 일반적인 생물과 다르게 극지생물들은 `결빙방지 물질` 또는 `부동 단백질`이라고 부르는 천연 `동사(冬死) 방지` 물질을 가지고 있다.
생물이 얼어 죽는 것을 세포단위로 살펴보면 이해하기 쉽다. 일반적으로 온도가 낮아져 세포가 얼게 되면 세포 안팎에서 얼음 결정이 뭉치고 커지면서 세포가 눌리거나 찢어져 파괴된다. 또 얼었을 때 세포가 살아 있다 해도 해동되는 과정에서 작은 얼음들이 뭉치는 재결정화가 발생해 세포가 찢어지거나 눌려서 파괴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김 박사는 "극지생물이 가지고 있는 결빙방지 물질은 얼거나 녹을 때 얼음이 뭉치고 커져 세포를 죽이는 것을 막아준다"며 "이러한 메커니즘을 활용하면 살아 있는 세포나 생물을 얼려서 보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냉동보다 해동 과정에서 결빙을 막는 기술이 더 까다롭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작은 생물이나 장기 등을 냉동보관할 수 있다면 냉동인간의 해법도 찾을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김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최근 북극에서 자라는 효모에서 결빙방지 물질을 찾아내고 대량생산(배양)하는 데 성공했다.
그동안 알려진 결빙방지 물질은 많았지만 많은 양을 생산하지 못하는 게 한계였다.
연구팀은 유전자를 재조합하는 기술을 이용해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었다. 연구팀은 특히 이 물질을 활용해 사람 혈액과 줄기세포를 얼렸다 녹이는 실험을 해 생존율을 95%까지 끌어올렸다. 국내외적으로 혈액이나 줄기세포를 얼렸다 다시 살리는
김 박사는 "혈액은 40일이 지나면 폐기처분해야 하므로 냉동보관 기술이 필요하다. 또 장기이식 수술에서 신선도 유지가 중요하므로 냉동기술이 유용할 것"이라며 "냉동인간을 실현하기 전에도 냉동보존 기술이 쓰일 곳은 많다"고 말했다.
[심시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