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 김지웅(29·가명)씨는 말 한마디 잘못 했다가 톡톡히 대가를 치르고 있다. 출근 첫 날 환영식에서 "자네, 술은 잘하나?"라는 질문에 호기롭게 "예, 잘하는 편입니다"라고 대답한 뒤로 부서 공식 술상무가 된 것. 김씨는 "첫날이라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술을 잘 마신다고 부풀려 말했다"며 "이후 술자리만 있으면 자꾸 부르는 바람에 아주 곤란해졌다"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 "상사의 예쁨을 얻는 대신 건강을 잃었죠"
신입사원의 화끈한 주량 공개가 때로는 이른바 '술 상무'로 급승진하게 만들기도 한다. 말 한마디 잘못 했다가 회사 생활 내내 술자리만 불려다닐 수도, 회식 자리서 술은 도맡아 마실 수도 있는 것이다.
직장생활 5년차인 박기환(33·가명) 대리도 비슷한 사례다.
박 대리는 새롭게 배치된 부서로 출근하면서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애주가'로 소문난 부장님때문에 회식이 잦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최소 3차까지는 가야 만족하고 술자리도 업무의 연장으로 생각한다는 부장님의 지론을 익히 들은 바 이미 숙취해소제 한박스도 구입해놨다.
실제로 전보 받은 첫날 부장은 박 대리에 "주량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고 박 대리는 큰 맘 먹고 "소주 3병 까지는 거뜬하게 마셔야 사회생활할 줄 아는 거 아니겠습니까"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실제로 박 대리의 주량은 1병 반에서 2병 정도.
이후 회식 자리만 되면 부장은 박 대리를 옆에 끼고 앉아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덕분에 박 대리는 새로운 부서에서 빠르게 적응할 수는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술자리 때마다 약을 먹어가며 정신을 챙겨야만 했다.
박 대리는 "신임을 얻고 건강을 잃었다"며 "술자리가 업무의 연장이라는 말이 요즘처럼 무서울 수가 없다"고 말했다.
◆ 직장인 2명 중 1명 "주량 거짓말 해봤다"
최근 이직에 성공한 이정현(29)씨는 "술을 잘 못마신다"고 회사 사람들에게 천명했다. 대학시절 과내에서도 알아주던 '주당'이던 임 씨가 술을 못 마신다고 말한 이유는 전 직장에서 얻은 뼈아픈 경험 때문이다.
홍보담당자인 이씨는 대낮에도 술을 마시는 경우가 잦았는데 '여자라서 얕잡아 보이면 안된다'는 생각에 누구보다 열심히 술을 들이켰다. 그러던 어느 날 대낮부터 과음한 이씨는 울렁거리는 속을 잡고 오후 느즈막히 회사로 복귀해 화장실로 향했다. 조금만 앉아있다가 나와야지 했던 이씨는 변기를 붙잡고 잠들어버렸다. 정신을 차리니 이미 퇴근 시간을 훌쩍 넘겼고 외근이 많은 탓에 사무실에 있는 어떤 사람도 이씨를 찾지 않았다고.
이씨는 "과음한 탓에 그날 업무가 밀리는 바람에 다음날까지 지장이 생겼다"며 "차라리 술 못마신다고 말해버리는 게 내 주량대로 마실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주량을 거짓말 하는 직장인이 과반수 이상인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취업포털 커리어가 직장인 752명을 대상으로 '평균 주량'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직장인의 52%는 회식 시 자신의 주량을 거짓말해봤다고 밝혔다.
주량을 부풀려 거짓말 했다는 직장인이 72.1%, 줄였다는 직장인이 27.9%로 '잘 마신다'고 말한 직장인이 훨씬 많았다.
주량을 부풀려 거짓말 한 이유는 '상사에 잘 보이기 위해'가 50.7%였고 '동료와의 경쟁심리 때문'
주량을 줄여 거짓말한다는 이유로는 직장인 32.1%가 '다음 날 업무에 지장이 가지 않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이밖에도 '건강을 위해' 33%, '주사를 부릴까봐' 16.5%, '미용을 위해' 10.1% 의 응답비율을 보였다.
[김잔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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