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이랬던 건 아니었다.
한때는 그도 건실한 가장이었다. 호텔조리학을 전공한 송 모씨(34)는 작년까지만 해도 웨딩홀 뷔페 요리사로 일하며 1남 1녀를 부양했다
작년 6월 부인과 이혼하고 양육권마저 빼앗기기 전까진 말이다.
이혼의 대가는 혹독했다. 대부분의 재산을 넘겼고 꼬박꼬박 양육비까지 부담해야 했다. 요리사 월급으로는 생활비조차 감당하기 버거웠다. 궁핍은 이내 범죄에의 유혹으로 송씨를 이끌었다.
어느 영화에서 본 밧줄을 이용한 절도 장면이 떠올랐다. 순간 머릿속에 섬광이 일었다.
빨랫줄로 고층 아파트 옥상 난간에 몸을 묶고 베란다 창문을 통해 빈집에 침입했다.
첫 범행으로 손에 거머쥔 돈은 자그마치 800만원. 작년 9월 송씨는 직장을 그만뒀다.
몇 번 시도해보니 추락의 공포가 찾아왔다. 밤마다 아파트에서 떨어지는 악몽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에 5번째 범행부터 수법을 바꿨다. 훔친 오토바이를 이용해 배달원을 가장한 채 아파트 현관문을 통과했다.
그런 뒤 비어있는 아파트 문을 ‘배척(일명 빠루)’으로 뜯어내 금품을 털기 시작했다.
모든 게 순조로워 보였다. 6개월 가량 수도권 일대 아파트를 돌면서 1억2000만원치 금품을 훔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 중 3500만원은 현금화해 대출금을 갚고 생활비로 썼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지난달 17일 서초구 한 아파트 14층에 침입하면서 그의 범행은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
범죄의 대가는 이혼의 대가보다 혹독했다. 방안에 놓인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려던 찰나, ‘달그닥’ 현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잔뜩 겁에 질린 송씨는 미리 준비해 온 빨랫줄을 급하게 창살에 묶고 도주를 시도했다.
부주의 탓이었을까. 14층 배란다에서 내려오던 송씨는 곧장 1층 화단으로 추락했다. 무려 40m 높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있어 머리에 손상을 입지 않아 즉사는 면했지만 척추와 다리뼈가 분쇄 골절돼 3개월 이상 장기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송씨는 심각한 후유증으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서울 송파경찰서는 “지난해 8월부터 지난달 18일까지 수도권 일대 아파트를 돌며 17차례에 걸쳐 1억2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송씨를 상습 절도 혐의로 불구속 상태로 수사했고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23일 밝혔다.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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