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들이 형사 사건으로 받는 성공보수가 부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변호사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변호사들은 이번 판결이 현실과 크게 동떨어진 ‘규제’의 성격을 띠고 있어 오히려 부작용만 양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이 24일 “형사 사건에 관해 체결된 변호사 성공보수 약정은 수사·재판의 결과를 금전적인 대가와 결부시켜 변호사 직무의 공공성을 저해하고 사법제도의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며 형사사건의 변호사 성공보수 약정을 무효라고 판결했다.
형사 사건 성공보수 약정에서 ‘성공’은 수사 단계의 불기소, 약식명령 청구, 불구속 기소, 재판 단계의 구속영장 기각 또는 구속 피의자나 피고인의 석방, 무죄·벌금·집행유예 등과 같은 유리한 본안 판결을 뜻한다.
성공보수가 ‘성공’에 유리한 전관 출신 변호사를 우대하는 ‘전관예우’ 풍조를 부추기고 있다고 진단하며 성공보수 약정이 없어지면 전관예우나 ‘유전무죄·무전유죄’라는 말로 일컬어지는 사법 불신이 줄어들 것이라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그러나 변호사들은 대법원의 이런 해석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말한다.
◇ “성공 보수 없어지면 소비자들만 피해”
변호사가 수행하는 법률 서비스는 사법 절차를 도와주는 과정과 의뢰인이 기대하는 판결을 끌어내는 두 가지 측면이 함께 있다.
착수금은 이 중 앞부분에 대한 변호사의 책임만을 담보하고 있어 의뢰인들이 받는 법률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란 지적이 변호사업계에서 나온다.
이는 일반적인 거래에서 선불제와 후불제의 차이를 생각해봐도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문제다.
실제 변호사들이 사건 수임 뒤 착수금만 받고 수사나 재판 과정에 성실히 임하지 않아 의뢰인들이 제대로 된 법률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성공보수는 변호사들이 사건을 끝까지 책임지고 최선을 다하도록 하는 중요한 유인책인데, 이를 없앤다면 오히려 의뢰인, 변호사 시장의 소비자들에게 피해가 전가될 수 있다고 변호사들은 내다봤다.
또 승소율을 높여 좋은 평판을 쌓고 이를 바탕으로 더 많은 사건을 수임하거나 성공 보수를 높이려는 유인이 없어지면 변호사들이 사건 수임 자체에만 목을 매게 돼 사건 수임만 전문으로 하는 ‘브로커’가 판칠 수 있다고 변호사들은 전망했다.
한 변호사는 “인터넷에 들어가면 법률 상담을 원하는 질문 글에 법조브로커들의 어설픈 답변과 상담 유인이 활개치는 상황에서 그나마 법률서비스의 질을 담보하는 성공보수 약정을 없애라는 것은 너무나 현실을 무시한 판단”이라고 주장했다.
◇ “무전유죄-전관예우 양극화 더 심해질 것”
현재 변호사 수임료에 대한 명시적인 규정은 없지만, 변호사가 과다한 금액을 요구한 약정에 대해서는 의뢰인이 소송을 내면 법원이 약정을 인정하지 않는 식으로 제재가 이뤄져 왔다.
이 때문에 변호사들의 성공보수 약정이 무리하게 이뤄지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게 변호사들의 항변이다.
또 변호사들이 애초 받아야 할 금액을 일반 계약의 ‘잔금’ 형태로 받는 것이 성공보수였는데, 이런 구조를 없애면 자연히 착수금 액수가 오를 수밖에 없다고 전망한다.
이렇게 되면 목돈이 없는 서민들은 좋은 변호사를 선임하기가 더 어려워져 사무장이나 브로커가 제시하는 낮은 가격에 쉽게 유인되고, 돈이 많은 부유층은 전관 출신의 유능한 변호사를 선임하려고 웃돈을 더 얹어주는 현상이 심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전관 프리미엄’은 더 높아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한 변호사는 “의뢰인 한 명이 돈이 없다고 해서 착수금 50만원만 받고 시작해 집행유예로 풀려난 뒤 한 달에 50만원씩 몇 달 동안 나눠 받은 적도 있다”며 “재벌이나 정치인들은 돈에 구애받지 않겠지만, 일반 서민들은 착수금이 높아지면 국선 변호사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반면, 전관 출신 변호사들이나 대형 로펌은 처음부터 돈을 많이 받을 것”이라며 “돈 많은 사람들은 ‘집사 변호사’를 고용해 잔심부름까지 시키는 현실에서 성공보수를 없애는 것은 국민의 사법 신뢰를 높이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매경닷컴 디지털뉴스국]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