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불이 교차하는 시험이었어요.” “국어랑 영어는 불수능, 탐구영역은 물수능이었던 것 같아요.”
201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다음날인 13일 오전 서울 서초고 3학년 교실에 앉아 가채점을 한 수험생들의 표정에는 당혹감이 묻어났다.
시험장에서 적어온 자신의 답안과 교사가 나눠준 정답지를 비교하던 학생들의 표정은 점점 굳어갔다. 여기저기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친구들과 성적을 비교해 본 뒤 책상에 고개를 파묻는 학생도 있었다. “난 재수 확정이야”라며 애써 호탕하게 웃음을 지어 보이는 학생도 있었다.
전날 저녁에 미리 가채점을 하지 않았다는 한 학생은 예상 외로 등급이 떨어진 과목이 너무 많다며 머리를 쥐어뜯기도 했다.
가채점을 마무리한 학생들은 국어와 영어가 생각보다 어렵게 나왔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특히 시험 전부터 난도가 어느 정도 높을 것으로 예상됐던 국어는 정말 까다로웠고 예상보다 등급이 떨어졌다고 토로하면서 울상을 지었다.
서초고 문과 김민주(18)양은 “평소 국어는 1등급을 유지했는데 이번에 최소한 2∼3개 등급은 떨어질 것 같다”며 “수시에 지원한 상태인데 최저등급에 걸리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 뿐”이라고 말했다.
서초고 문과에서 전교 1등을 한다는 김모(18)양은 “1교시에 국어가 예상보다 너무 어려워서 잠시 ‘멘붕’이었다”며 “비문학 지문도 까다로웠고 문학도 우리가 아는 내용과 다른 내용의 ‘토끼전’이 나오는 등 특이한 지문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과 이정원(18)군은 “국어A를 선택했는데 이과 관련 지문에서 너무 전문적인 내용이 나왔고 2점짜리 어휘 문제도 까다로웠다”며 “비문학은 EBS를 기반으로 한 것 같지만 그보다 심화된 문제가 나온 것 같다”고 전했다.
영어 과목도 예상보다 어려웠고 EBS 연계율도 체감을 크게 하지 못하겠다고 학생들은 입을 모았다.
문과 김서연(18)양은 “처음 문제를 받았을 때 눈에 익은 지문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이상하게 풀기 어려웠다”면서 “선지도 애매했고 빈칸 넣기 문제의 경우 빈칸이 주제문이 아닌 애매한 곳에 배치돼 당황했다”고 말했다.
이과 박모(18)양은 “EBS 비연계 지문이 꽤 많았고 작년보다 어려웠다”면서 “당초 평가원이 영어 1등급 컷을 100점으로 하겠다고 했었는데 정작 예상 등급컷은 92점 정도니 학생 입장에서는 조금 당황스럽다”고 토로했다.
김양은 “탐구 과목의 경우 평이해 변별력이 없을 것 같다”며 “친구들도 탐구는 다들 쉬웠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한 학생은 “평가원이 작년 수준으로 난이도를 유지했다고 밝힌 영어는 확실히 어려웠고 반대로 조금 어려웠다고 한 수학은 예상보다는 쉬웠다”며 “평가원이 밝힌 난이도와 체감난이도가 약간 차이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과 김모(18)군은 “어제 시험 본 직후 집에 가는 길에 뉴스를 보는데 물수능이라는 얘기가 나와서 나만 망한 줄 알고 당황했다”며 “확실히 이번에 물수능은 아니었고 변별력이 있어 정시 지원 전략을 짤 때 수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고 학생들도 예상보다 수능이 어려워 가채점 결과가 좋지 않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부 학생들은 교실에서 친구들을 만나 1년간 고생한 결과가 나온 데 대해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압구정고 3학년 문과 1등인 최재연양은 “국어와 수학은 예상대로 나왔는데 영어가 타격이 컸다”며 “수시를 높여서 지원했기 때문에 최저등급을 맞추는 것이 관건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과인 송지연양은 “믿었던 영어와 과학 성적이 예상보다 낮았다”며 “수시를 논술 위주로 지원했기 때문에 논술 시험에 중점을 두고 이후 대비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장교사들도 아이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시험이 어려워 당황하는 모습들이 역력하다고 전했다.
문일고 김혜남 영어교사는 “모의고사와 비교해 갑자기 시험이 어려워졌다는 반응들이 많았다”며 “실력이 탄탄한 아이들은 제 등급을 지켰는데 모의고사 때 점수 변동폭이 컸던 아이들은 하나같이 등급이 모두 떨어졌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쉬운 수능이라고 해서 그에 맞춰 준비했던 아이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동대부속여고의 김용진 국어 교사는 “전체적으로 모의고사보다 어려워진 것 같다”며 “상위권 아이들 중에서도 예상 외로 점수가 안나온 경우도 일부 보이는데, 준비 자체를 쉬운 수능 기조에 맞춰서 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작년이 워낙 쉬운 수능이었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에 올해 상위권 변별은 확실히 좋아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판곡고의 조만기 수학교사도 “시험 당일인 어제 예측했던 것보다 실제 오늘 학생들의 반응을 보니 더 어렵게 느낀 것 같다”며
압구정고 백미원 교감은 “학생들이 낸 가채점 결과를 받아보고 분석 중”이라며 “시험이 어려워 전반적으로 점수는 떨어졌지만 등급으로 보면 대부분 평소 예상한 대로 나온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매경닷컴 디지털뉴스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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