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균 위원장처럼 최근 시국사범들은 마지막 은신처로 조계사를 찾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명동성당이 그 역할을 했었죠.
김종민 기자가 보도합니다.
【 기자 】
민주화 바람이 거셌던 1980년대.
명동성당은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우던 인사들에게 '민주화의 성지'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2000년 12월 한국통신 노조원의 농성과, 2001년 7월 민노총 단병호 위원장의 단식 농성 당시 명동성당은 신도들의 불편이 가중된다며 퇴거를 요청했습니다.
사실상 은신처로서의 역할을 거부한 겁니다.
그러면서 '조계사'가 대안으로 떠올랐습니다.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를 주도했던 이석행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은 체포영장이 발부되자 조계사로 몸을 숨겼습니다.
당시 조계사 총무원은 경찰의 검거 협조 요청을 거절하면서, 정부에 대국민 화합 조치를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2년 전 철도노조 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수배됐던 박태만 철도노조 부위원장도 조계사에 20여 일간 머물렀습니다.
▶ 인터뷰(☎) : 박성식 / 민주노총 대변인
- "조계종이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관용과 자비를 베푼 경우가 많았고 철도 간부들을 품어준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기대를 갖고 조계사에 신변을 의탁한 겁니다"
명동성당에서 조계사로.
세월이 흐르면서 장소는 바뀌었지만 종교시설은 여전히 최후의 은신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MBN뉴스 김종민입니다.
영상취재 : 김재헌 기자
영상편집 : 서정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