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대학원생들이 연구 대신 영어 시험에 매달리고 있다. 이공계 학생들이 3년간 박사과정을 하면서 병역을 대체할 수 있는 전문연구요원 제도의 경쟁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석사 수료를 앞둔 학생들이 연구실에서 눈치를 보며 영어 공부를 하거나 강남 영어전문학원을 다니는 풍경까지 펼쳐지고 있다.
전문연구요원 제도는 고급 과학기술 인재를 양성하고 우수인력에게 지속적인 연구기회 부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병무청장이 선정한 지정업체에서 3년간 연구인력으로 활동하도록 지원하는 병역대체복무제도이다. 문제는 한국사 능력 시험 3급 이상인 학생 중 대학원 학점과 영어 능력검정시험인 텝스(TEPS) 점수에 같은 비중을 두고 선발하기 때문에 합격을 위해 이공계생이 영어에 매달리는 점이다.
올해 전문연구요원 선발 인원은 600명(전기 415명, 후기 185명)으로 전년대비 100명이 줄었다. 하지만 합격 여부에 큰 영향을 미치는 텝스 성적은 갈수록 올라가고 있다. 2013년 전기 전문연구요원 합격자의 텝스 평균점수는 650.15점이었으나 올해 전기부터 711.56점으로 700선을 돌파했다.
전문연구요원을 준비한 연세대 공대 대학원생 양 모씨는 “학점이 비슷하기 때문에 결국 텝스에서 당락이 좌우된다”며 “대학원 석사 과정을 시작할 때만 해도 경쟁률이 2대 1이 안됐기 때문에 이렇게 합격이 힘들 줄은 몰랐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이공계 인재를 뽑는 전문연구요원 선발에 영어가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이상하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도권 이공계 학생들은 영어 공부를 위해 휴학하거나 일찌감치 영어 시험을 준비에 뛰어들고 있다. 올해 초 고려대 공대 대학원에 진학한 최 모씨는 “주변에 전문연구요원 지원을 재수, 삼수하는 선배들이 늘었다”며 “전문연구요원을 염두에 두고 대학원에 진학했을 때부터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부 학생과 교수들은 지방에 배정된 전문연구요원 선발인원이 늘어 수도권 공대들이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영어 합격 점수가 크게 차이난다는 것이다. 실제로 올해 전기 합격자의 텝스 평균점수는 750.34였으나 비수도권은 622.04였다. 후기에도 수도권이 794점으로 800선을 목전에 두고 있는 반면 비수도권은 627.31 수준이었다.
더군다나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지원자가 많은 수도권 학교들은 전문연구요원 합격률이 갈수록 떨어지는 실정이다. 2012년 서울대는 지원자 393명 중 65%가 합격했고 연세대는 120명이 지원해 54%, 고려대는 77명이 지원해 49%가 합격했다.
반면 KAIST나 GIST 이공계 대학원생은 대부분 자동으로 전문연구요원 자격을 얻는다. 또 포항공대는 올해 102명 지원자 중 합격률이 80%에 달했다.
[정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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