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에 대한 예산 집행 내역을 공개하라”는 국회 요구에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또 다시 ‘깜깜이 소송’이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2013년 론스타에 이어 올해에만 하노칼, 엔텍합 등 외국계 투자자 두 군데로부터 소송이 제기된 만큼 내년에는 더 많은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와 박주선 국회의원(무소속) 측에 따르면 법무부는 지난 5월 “론스타 ISD와 관련된 2015년도 예산사업 설명자료와 집행내역 등을 제출하라”는 요구를 거부했다.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4조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서류제출요구를 받은 국가기관은 직무상 비밀을 이유로 서류제출을 거부할 수 없다. 자료제출을 거부하면 소관 위원회 의결로 검찰 고발도 가능하다.
그러나 법무부는 “론스타 중재 대응을 위한 2015년도 사업 예산은 현재 진행 중인 중재재판과 관련된 자료이고, 재판에서 대한민국에 불이익하게 작용할 우려가 있어 제출하기 곤란하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2013년 9월 말 박 의원 측이 동일한 자료를 요청했을 때와는 상반된 반응이다. 당시 법무부는 ‘론스타 소송 관련 로펌별 지출비용, 번역비용 등 집행현황’이 포함된 상세 예산 자료를 제출한 바 있다.
더욱이 당해년도 예산사업 설명자료는 일반인도 해당 기관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아볼 수 있고, 몇몇 부처는 홈페이지 게시를 통해 공개하고 있기도 하다.
이후 박 의원측이 비공식적으로 입수한 예산안 자료에 따르면 법무부는 올해 189억여원을 집행했고 내년도 론스타 관련 예산에 34억3800만원을 편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박 의원은 “국회의원은 국민의 주권을 위임받은 사람들이고 행정부는 대통령에 의해 선출된 권력”이라며 “‘행정독재’가 통제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송기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국제통상위원장(52·사법연수원 30기)은 “정부를 상대로 제기된 첫 ISD를 비밀주의로 다루면서 앞으로 맞딱드릴 ISD의 소요 예산도 비밀리에 처리하기 위한 선례를 만들려고 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한편 내년에는 론스타 외에도 하노칼, 엔텍합 ISD 절차가
현재 국세청의 내년도 예산안에는 하노칼에 대한 ISD 대응 예산으로 38억여원이 잡혀있지만, 엔텍합을 담당하는 금융위원회 예산안에는 국제투자분쟁 대응사업을 위해 명시적으로 책정된 예산이 없는 상태다.
[홍성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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