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마트 주차장을 가면 외제차는 어디로 주차시키고 일반 차는 못 대게 해요. 여기저기 차별이 많아요.”(서울 강동구 거주 여성·40대 초반)
“주위를 보면 거의 투기를 해서 돈을 벌지 열심히 일해서 돈 버는 사람은 없어요.”(광주광역시 거주 여성·60대 초반)
105명의 심층면접자들에 투영된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폭발 일보직전의 ‘초갈등’ 사회였다.
김문조(고려대)·강원택(서울대)·함인희(이화여대)·윤성이(경희대)·김남옥(고려대) 교수 등 저명 사회·정치학자들이 전국 105명의 시민을 상대로 심층 면접조사한 ‘한국형 사회 갈등 실태진단 연구’ 보고서에는 우리 국민들은 일상과 직장, 사회이슈 등에서 심각한 차별과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금수저·흙수저’, ‘갑(甲)질 횡포’, ‘N포 세대’ ‘헬조선’ 등 현실을 비관하는 신조어가 등장하고 있는데, 이는 청년 계층에서 우리사회의 갈등이 표출되는 현상으로 분석했다. 이 같은 초갈등 양상이 조절되지 않고 분노를 넘어 원한의 감정으로 이어질 경우 상대에 대한 배척과 공격 등 사회의 기반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다는 게 연구팀의 진중한 경고다.
연구팀은 ▲불만을 넘어선 원한 ▲좌절을 넘어선 포기 ▲격차를 넘어선 단절 ▲갈등을 넘어선 단죄 등 극단적 양상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미래에도 나아질 것 같지 않다는 인식의 팽배가 ‘분노사회’를 넘어선 ‘원한 사회’로 향하게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 명예교수는 “좌절을 넘어 오로지 포기만이 (사회적) 선택지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N포세대라는 말처럼 젊은세대가 취업을 위해 끊임없이 뛰지만 금수저·흙수저 논쟁처럼 계급 재생산이 대물림되고 사회 여건은 패자부활전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 대구의 30대 직장인(여·사무직)의 경우 “공부를 많이 하고도 성공이 안 되는 사람들을 보면 이게 팔자라는 영향을 받지 않나 싶다”고 대답했고, 광주광역시에 거주하는 55세 주부는 “열심히 살아서는 절대 잘 살 수 없다. 열심히 살면 그냥 밥 먹고 사는 정도”라고 극도의 절망감을 표출했다.
서로의 격차를 넘어선 단절 현상도 연구팀을 긴장시키는 초갈등 사회의 단면이었다. 연구팀은 “금수저·흙수저 등 청년들의 현실에 대한 자기비하적 표현들이 50~60대 등 다른 세대에서도 이미 공감을 얻고 있다”고 염려했다.
연구팀은 이 같은 확산 현상이 상류층에서는 “돈이 없는 사람들은 애국심도, 도덕성도 없다”는 식으로, 하류층에서는 “돈 있는 사람들은 다 부정부패하고 없는 사람을 골탕먹인다”는 식으로 서로를 규정·단죄하는 양상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특히 경고했다.
일례로 서울 서초동에 거주하는 고소득층 가정의 주부(65)는 심층면접에서 “하층으로 된 사람은 ‘전쟁이나 터져서 깽판으로 살자, 너도 죽고 나도 죽고’ 식의 부류가 많다”고 답변한 반면, 서민층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한 지방도시 거주 직장인(41·여)은 “(부자들이) 도덕을 얘기하지만 실제 자기들이 저지르는 부패 이런 걸 보면 전혀 도덕적이지 않다. 도덕적 해이가 굉장히 심각하다”고 평가했다.
김 명예교수는 “사회구성원으로서 개인의 갈등과 불안실태, 그리고 불안이 발생하는 이유를 질적으로 분석하고 그 ‘속살’을 들여다보기 위해 전국에서 105인의 면접자를 추출해 스토리텔링식으로 면접을 진행했다”며 “이번 조사에서 나타난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갈등은 경제력의 차이, 곧 빈부 격차임을 알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 밖에도 부익부 빈익빈 속 극도의 경쟁 사회에서 내부 갈등이 피로를 넘어선 ‘탈진’으로 전개되고 불신을 넘어선 ‘반감’, 불안을 넘어선 ‘강박’ 등으로 악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 명예교수는
[이재철 기자 / 김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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