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이후 대량해고를 경험한 우리나라 기업들은 비로소 회사에 적합한 인재를 뽑는 일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됐다. 기업들은 앞다퉈 총무팀에 포함돼 있던 인사 업무를 따로 분리해 인사팀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단순히 필답고사 점수로 합격여부를 가르던 채용 방식에서 적성검사, 외국어능력평가는 물론 3~5배수에 달하는 면접까지 일상화됐다.
기업들은 이렇듯 좋은 인재를 뽑기 위해 연간 막대한 비용을 들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인재 구하는 일이 어렵다고 말한다. 기업 뿐 아니다. 경제 위기로 취업 기회가 갈수록 제한되는 구직자들 역시 “일 좀 해봤으면” “면접 한번 볼 수 있었으면” 하소연한다. 고용의 미스매치가 발생하고 있다.
이처럼 구인난과 구직난 속에 “귀사는 사람을 제대로 채용하고 계십니까?”란 화두를 CEO들에게 던진 이가 있다. 인사 부장이 원하는 인재가 아니라,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뽑도록 면접관들에게 면접의 A부터 Z까지 교육시키는데 앞장서고 있는 시너지컨설팅의 이병철(사진) 대표다. 그는 구인난과 구직난을 해결하려면 우선 기업의 채용과정 특히 면접이 제대로 이뤄져야한다고 믿고 있다.
웬만한 기업들의 채용 비밀은 다 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를 만나기 위해 지난달 29일 왕십리에 위치한 사무실을 찾았다. 벽면 한쪽을 크게 차지하고 있는 보드에는 채용에 관한 갖가지 이론의 키워드와 기업 교육 일정 등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채용과 면접에 관한 수많은 책들도 그득그득했다. 지방에서 기업 교육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이 곳에서 또 다른 강의와 면접관으로 직접 참여하기 위한 준비에 여념이 없어 보였다.
-기업 채용 컨설팅 중에서도 면접관 교육에 매진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대학원 논문을 준비하면서 우리나라 채용시장의 문제점에 대해 여실히 느꼈어요. 미국과 같은 외국에서는 직원 해고가 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의 직원을 뽑기 위해 면접에 들이는 시간이 한 시간 가량 됩니다. 인생 전반을 훑어보는거죠. 하지만 우리나라는 직원들 해고가 어렵습니다. 그렇게 어려운데 사람은 너무나 쉽게 뽑습니다. 1인당 면접보는 시간이 고작 8분에 불과합니다. 1년 넘게 그 면접만을 준비해온 구직자들로서는 엄청 불행한 일이죠. 전경련에서 CEO들을 대상으로 물어보면 70%가 ‘현재 직원을 다 바꾸고 싶다’고 답합니다. 기업 조직에 사람이 잘 못들어오면 당장 같이 일하는 사람이 힘들어지는 것 뿐 아니라 소비자가 힘들어지고, 결국 그 기업이 힘들어진다는 것을 깨달은 결과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수준 이하의 면접관들이 면접을 보고, 어떻게 인재를 고를 줄도 모르는 기업들이 많아요. 이같은 고용의 미스매치 문제를 해결하려면 면접부터 철저히 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경영의 달인’ 잭 웰치는 망해가는 기업은 사람을 뽑는데 회사 자원의 10%만을 쓰고, 교육에 90%를 쓴다고 했다. 반면 성공적인 기업은 직원 채용에 회사 자원의 90%를 쓰고, 교육에는 10%만 쓴다.
이 대표는 연봉 2400만원의 사원이 입사해 대리, 과장, 차장, 부장, 이사까지 19년을 근무한다고 가정했을 때 회사가 지불해야하는 비용은 총 23억4000만원에 달한다고 했다. 특별한 기술직이나 전문직이 아니고 그저 평범한 사원을 고용할 때 이만큼의 비용이 드는 것이다. 회사로서는 사원 한명도 허투로 뽑을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현재 기업들이 진행하는 면접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회사의 운명을 결정짓는 채용 면접관임에도 불구하고 자질이 부족하고 그래서 수준 미달의 질문을 던진다는 것입니다. 허술한 면접은 장기적으로 회사에 마이너스가 될 수밖에 없어요. 일례로 “애인은 있냐”,“데이트는 어디서 하느냐” “누나가 결혼은 했냐?”등 업무와는 전혀 상관없는 질문을 한다거나, “업무가 힘든데 버틸 수 있겠느냐?”, “주말에 제대로 못쉴텐데 괜찮겠느냐?”라고 회사의 장점 보다는 단점을 열거하는 경우도 잘못된 것입니다.
이 대표는 지방대, 비명문대를 차별하는 발언을 일삼거나, 거만한 태도로 일관하는 면접관들이 많아 아찔하다고 했다. 왜냐면 면접자들은 ‘붙으면 직원이지만 떨어지면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안 좋은 감정으로 면접을 끝낸 구직자들은 안티 소비자들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대표는 “몇 백대 1의 채용 경쟁률이라고 홍보하는 기업들을 보면 한심합니다. 그 많은 인원을 기업의 안티팬으로 만들었고, 또 탈락시킨 후보자가 경쟁사에 입사해 우리를 위협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죠”라고 말했다.
-어떤 기업들이 면접관 교육을 받았나요.
▲2010년 시너지컨설팅을 처음 설립했을 때 대우조선해양에서 첫 채용 관련 컨설팅과 면접관교육을 실시했습니다. 그 인연으로 대우증권, 산업은행, 농협, 교보생명, 알리안츠생명 등 금융권에서 러브콜이 쏟아졌고요. 이후 이랜드그룹, 신세계그룹, 롯데그룹, GS홈쇼핑, 효성그룹 등 유수 기업의 채용 프로세스를 설계하고, 면접관 교육 등을 담당했습니다.
이 대표는 국내 1000대 기업 중 공기업을 포함한 852개사에서 채용과 면접의 중요성 및 교육에 대해 강의를 했다. 1000대 기업이 국내 존립하는 기업의 3%에 불과하다고 했을 때 아직 97%의 중소중견 기업들은 이같은 교육을 받지 못한 실정이다. 이 대표는 이들 기업에게 채용과 면접 관련 교육의 필요성을 설파하는 게 자신의 중요한 목표라고 했다.
-제대로 된 인재를 뽑기 위해 기업이 준비해야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우선 제일 중요한 게 회사에 적합한, 회사가 필요로 하는 인재에 대한 정의를 전직원들이 공감하고 있어야한다는 점입니다. 인사 부장이 원하는 혹은 내가 일하기 좋은 사람을 뽑는 일이 채용의 목적이 돼서는 안되는 것이죠. 조직 구성원들끼지 공감대가 형성된 인재상을 구직자들에게도 명확히 알려주는 공고문을 내야하고 장시간 면접을 보는 구조를 갖춰야합니다. 이같은 채용 시스템 속에서 인재를 고를 수 있는 자질을 면접관들이 갖춰야하죠. 우수한 면접관들은 첫째 구직자들의 능력보다는 태도를 중시여깁니다. 그 다음으로 조직에 대한 생각과 직무능력, 동기 측면에서의 적합성을 꼼꼼히 따져 인재를 고릅니다. 요즘 탈스펙이 일상화가 됐는데, 개인적으로 오버(over) 스펙이 문제이지 해당 직무능력 등을 검증할 수 있는 ‘온(on) 스펙’까지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대로 된 면접을 보기 앞서 이 대표는 면접자와 구직자 간 ‘라뽀(rapport)’ 형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프랑스어가 어원인 이 말은 ‘마음의 유대’를 뜻한다. 잔뜩 긴장하고 있을 면접자들의 긴장을 풀어줌으로써 제 역량을 십분 발휘하도록 도와주자는 생각에서다. 이 대표가 보기에 면접자와 구직자 간 라뽀를 형성하는데는 10분이 채 안걸린다.
우선 하드웨어적인 부분으로는 구직자 앞에 면접관과 마찬가지로 책상을 놔주는 것이다. 구직자들의 면접 자세가 한결 편해진다. 소프트웨어적인 부분으로는 책상 위에 미리 놓아 둔 물 한잔을 권유하면 끝이다. 물론 긴장한 지원자들은 그 물을 잘 안 마신다. 하지만 면접관이 웃으며 “물 안마시면 면접 시작 안해요”라고 말 한마디 하면, 백이면 백 다 마시게 돼 있다. 구직자들이 기분좋게 면접에 임할 수 있는 비결이다.
-기업의 면접관으로도 직접 참여하고 계십니다. 기억에 남는 구직자가 있을까요.
있습니다. 이름까지도 생생히 기억하죠. 소위 ‘SKY’ 출신만 채용하던 대기업 면접에 온 비SKY출신의 학생이었습니다. 결과부터 말씀드리면 당당히 합격을 했는데요. 그 친구는 면접장에 들어서자마자 면접관들에게 책자 한부씩을 돌렸어요. 아주 두툼했죠. 뭘까 싶어 보니 대학 1학년때부터 4학년때까지 해당 기업에 대해 나온 신문기사를 다 스크랩해온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얼마나 이 기업에 들어오고 싶어하는 지를 어필하는데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면접관들이 감동을 받았죠. 이런 구직자가 있으면 100% 뽑을 수밖에 없어요. 그와 같이 회사에 대한 열정과 충성심을 가진 직원이라면 어떤 일을 맡겨도 다 잘 해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구직자들, 구두적인 요소에서 준비를 참 잘해옵니다. 하지만 이렇게 비구두적인 아이템까지 준비해온 구직자는 생각보다 거의 없었어요. 게다가 준비해 온 것이 결코 한 순간에 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까다로운 면접관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기업들 채용시즌입니다. 면접을 앞둔 구직자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요즘 면접장에 가보면 자기 감정에 취해 말을 하거나, 아예 감정에 북받혀 우는 지원자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얼마나 취업을 준비하며 마음 고생이 심했는지 알 수 있어서 참 마음이 무겁습니다. 면접 장소에서 한풀이하는 듯한 인상을 받을 때도 많아요. 하지만 인재를 뽑으려는 면접관 입장에서 이런 태도는 바람직해 보이지 않습니다. 구직자들은 반드시 피해야합니다. 또 면접 볼 기업에 대한 준비를 할 때 기업 홈페이지만 달달 외워오는 경우가 많은데, 물론 이것도 필요합니다만 홈페이지 이상의 정보를 준비해야해요. 신문 기사를 참고할 수도 있고요, 업계 선배들에게 물어 현업에서 쓰는 용어까지 섭렵하면 더욱 좋죠. 그러면서 기업과 관련된 자신의 직간접적인 경험까지 자소서나 면접에서 잘 표현한다면 플러스가 될 것입니다.
이 대표는 면접자들이 또 흔히 하는 실수가 ‘우리’라는 인칭으로 말하는 것인데, 반드시 ‘저의 경험으로는’이라는 1인칭, 특히 과거 시점으로 답변을 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면접관들은 앞으로 잘 하겠다는 미래형 의지 표현이 아니
[디지털뉴스국 방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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