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 몰락한 미국 유학파 50대 사업가 구속…고액연봉에 한때 무역회사 운영
지난 1월 10일 낮 12시 30분께 점심 손님들로 북적이던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의 한 식당에 말끔한 양복 차림의 50대 남성이 들어왔습니다.
이 남성은 이모(55)씨로, 길 건너편 대기업 보험사 건물을 가리키며 "저 회사에 다니고 있다. 동료들과 저녁 때 올테니 13명 예약을 해달라"고 말했습니다.
이름과 전화번호까지 써두고 식당을 나간 이씨는 잠시 뒤 돌아와 "예약을 하는 사이 차가 견인됐다. 지갑을 차안에 뒀는데 견인비를 빌려줄 수 있느냐"고 부탁했습니다.
되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업주는 이씨에게 4만5천원을 내줬고, 돈을 받은 이씨는 택시를 타고 그대로 달아났습니다.
이씨는 수년째 이렇게 속칭 '네다바이' 사기를 친 돈으로 서울시내 찜질방을 전전하고 있는 터였습니다.
이씨의 삶이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씨는 지난 1980년 사업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가 고교와 대학을 마친 전도유망한 청년이었습니다.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명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이씨는 실리콘밸리의 유명 IT회사에 입사해 1986년 당시 연봉이 15만달러가 넘을 정도였습니다.
이후 사업에도 손을 대 성공 가도를 달렸습니다.
1993년 뉴욕으로 건너간 이씨는 한국에서 액세서리를 수입해 남미 지역에 수출하는 무역업을 시작했습니다. 월 매출은 20만∼30만 달러에 달했습니다.
자신감이 붙은 이씨는 사업 확장을 위해 한국 서울에 본사를 차리고, 중국 칭다오에 공장까지 설립하며 공격적 경영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곳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공장장의 잘못으로 '짝퉁' 제품이 납품되면서 사세가 급격히 기울었고, 끝내 2008년 회사는 부도났습니다.
빈털터리가 된 이씨가 기댈 수 있는 곳이라고는 아예 없었습니다.
사업 과정에서 미국에 있는 아내와도 갈등을 빚다 이혼, 가족과도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잠시 학원 영어강사도 했지만 자격증이 없어 적응이 어려웠던 이씨는 결국 범죄에 손을 댔다가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2014년 출소뒤 건강이 악화된 이씨는 일용직 일조차 힘들자 식당을 돌며 가짜 예약을 하고 견인비를 빌려 달아나는 수법으로 사기행각을 벌였습니다.
경찰조사 결과 이씨는 지난 2014년 8월부터 최근까지 서울, 경기 성남의 식당 70여 곳을 돌며 350여 만원을 챙겨
경기 성남수정경찰서는 상습 사기 혐의로 이씨를 구속했다고 5일 밝혔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는 모든 혐의를 인정했으며, 반성하고 있다. 그는 출소 뒤 미국으로 건너가 새 삶을 살겠다고 한다"며 "한때 엘리트였던 이씨가 사기꾼으로 몰락하는 과정을 조사하며 안타까울 뿐이었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경찰은 이씨의 여죄를 캐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