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사진)이 평창올림픽 조직위원장을 전격 사퇴한 것은 그만큼 한진해운 등 그룹 유동성 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방증으로 해석된다.
특히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4일 한진해운 조건부 자율협약을 시작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이달 사채권자 집회, 용선료 협상 등 굵직한 현안이 줄을 잇자 위기 경영을 총괄할 사령탑이 필요해졌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3일 한진 고위 관계자는 “한진해운 위기만이 아니라 그룹 차원에서 위기 관리할 필요성이 커졌다”고 조양호 회장의 조직위 사태 배경을 설명했다.
재계 관계자는 “자율협약 개시 이후 대주주 사재출연 압박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조 회장이 외부 활동을 자제하고 책임 경영에 나서는 쪽으로 방향 선회에 나섰다”는 해석을 내놨다.
◆한진해운 운명의 두달..총괄 사령탑 필요
5~6월은 한진해운 명운이 판가름나는 시기다. 4일 자율협약 개시를 앞두고 있는 한진해운은 이달 사채 만기 연장을 통해 채무 부담을 덜어야 하고, 자율협약 전제조건인 용선료 인하 협상에서도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
5월 한진 ‘위기의 시계’가 카운트다운에 들어가자 마자 조 회장이 조직위원장을 내려놓은 이유다. 재계 관계자는 “전문경영인 차원에서 내릴 수 없는 판단을 오너가 신속하게 내려야 할 국면”이라고 말했다.
우선 19일 사채권자집회를 통해 358억원 회사채를 연기하거나 출자전환해 시간을 벌어야 한다. 현대상선과 달리 한진해운 사채권자들은 개인 투자자가 많고, 시간도 부족하기 때문에 4일 사전설명회를 통해 회사 입장을 전달할 방침이다.
지난달 22일 한진해운이 자율협약을 신청하며 제출한 4112억원 실탄 마련안과 2일 비용절감으로 추가 확보하겠다는 360억원 만으로는 올해 연쇄적으로 다가오는 만기 사채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오는 6월을 시작으로 내년까지 한진해운이 순차적으로 갚아야 할 공모·사모채는 1조989억원에 달한다.
용선료 인하 협상은 한진해운의 운명을 가름할 최대 변수다. 한진해운 용선료 인하 협상은 현대상선 협상을 주도한 변양호-마크워커 팀이 나설 것으로 전망돼 최대한 시간을 단축시킬 순 있겠지만 외국 용선주들에게 일방적인 양보를 받아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쉬운 일은 아니다. 여기에 6월까지 새로운 얼라이언스 구성을 완료해야 한다.
한진 관계자는 “조양호 회장이 2014년 무너져가는 한진해운을 인수해 1조원 가량 지원에 나서 흑자전환 상태까지 돌려놨다”며 “오롯히 한진 경영에 올인해 책임 경영을 하겠다는 의지”라고 전했다.
2011년 4926억원에 달했던 영업손실은 2014년 소폭 흑자(240억원)로 돌아섰고, 지난해에는 영업 흑자 규모가 369억원으로 늘었다.
◆대한항공 위기 전이 차단
한진해운 ‘자금줄’이었던 대한항공은 지난해 부채비율이 868%에 달하는 등 지원 여력이 바닥난 상태다.
계열사 지원 등으로 지난해 대한항공 신용등급 A등급이 무너지자 한진해운 등 계열사 신인도도 투기등급으로 하락하며 추가 재원 조달이 어려워졌다. 한진해운발 위기가 확산되면 그룹 주력인 대한항공도 흔들릴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재계 관계자는 “대한항공이 한진해운 추가 지원 가능성을 일축했지만 해운 위기 차단은 결국 대한항공 등 핵심 계열사와 관계된 문제”라며 “해운과 항공 위기 등을 종합적으로 관리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발등에 불에 떨어진 상황에서 조 회장이 활동 우선순위 재편에 나선 것.
조 회장은 이날 사퇴한 평창올림픽 조직위원장 이외에도 방위산업진흥회장, 대한탁구협회 회장,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집행위원 등 6개 외부 직함을 갖고 있다. 체육계 관계자는 “조 회장이 다른 외부 활동도 점차 자제하는 분위기로 가지 않겠느냐”는 관측을 내놨다.
◆동계올림픽 차질 불가피
조 회장 전격 사퇴로 평창동계올림픽 준비는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조 회장은 연초에도 대한항공 시무식을 마치자마자 헬기를 타고 평창으로 날아가 올림픽조직위 시무식에 참석하는 등 올림픽 성공 개최에 큰 애착을 보였다.
당시 조 회장은 “올해는 대회 준비단계의 마지막 해로 평창 대회 명운을 가늠할 중차대한 시기”라고 각오를 밝혔다. 하지만 계열사 유동성 위기에 올해 성공 준비를 다짐한지 5개월여 만에 올림픽호에서 하차했다.
조 회장은 2009년 ‘삼수’에 나선 평창 동계월드컵 유치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으며 평창과 첫 인연
[김정환 기자 / 윤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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