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인구가 1000만인에 육박한 지금 1인 가구 증가 추세에 따라 반려동물 시장이 예전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커졌지만 그만큼 버림받는 반려동물도 늘어나고 있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버려지거나 길 잃은 반려동물은 8만2082마리로 집계됐고 이중 약 절반이 죽음을 맞이했다. 하루에 약 100마리꼴이다.
이같은 반려동물 사망을 막기 위해 유기동물 구조와 보호 활동에 나선 이가 있다. 바로 ‘내사랑 바둑이(내사바)’ 사설 유기 동물 보호소를 설립해 7년째 운영 중인 정경순씨다. 정씨는 서울 양천구 목동에서 바이올린 학원을 운영하며 학생들을 가르치는 평범한 교사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유기견 보호소를 후원하다가 지금은 운영까지 도맡아 유기견 200여마리, 유기묘 30여마리를 보살피고 있다. 50년간 바이올린만 보고 살아왔다는 정씨가 어떤 연유로 유기견 대모의 삶을 선택한 것인지 이야기를 들어봤다.
◆ 바이올린 대신 선택한 대모의 길
학생들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치면서 동물 보호소를 묵묵히 후원해오던 정씨가 선택의 기로에 선 것은 지난 2009년이다. 당시 정씨가 후원하던 보호소의 유기견 78마리가 소장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개장수에게 팔려갈 처지에 놓인 것이다. 정씨는 고민 끝에 직접 키우기로 결정하고 유기견들을 모두 데리고 온다. 그 결과가 바로 내사바다.
바이올린 대신 유기동물을 껴안으면서 정씨의 삶은 과거와 180도 달라졌다. 바이올린 학원을 통해 번 수익금은 대부분 보호소 운영에 소요된다. 동물들이 더 편히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자 아끼던 바이올린까지 팔았다. 생업을 지속하면서도 보호소 관리나 동물 구조, 치료 지원 등으로 몸을 무리하게 움직이다 보니 허리에 통증도 생겼다. 척추 4번과 5번이 무너져 병원에서는 수술을 권하고 있다..
“가족들이 다 미쳤다고, 제정신이 아니라고 하죠. 힘들게 바이올린 가르쳐놨더니 이렇게 개 키운다고…. 하지만 주인에게 학대받는 개들이 참 많아요. 치료해도 산다는 보장이 없다며 주변에서 포기하라는 애들을 결국 살려냈을 때 보람을 느껴요.”
정씨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들의 마음도 충분히 공감하지만 지금의 삶에서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고 밝혔다. 그는 “사람을 증오하고 두려워해 부들부들 떨던 개들이 자신의 진심을 알고 마음을 열 때 가장 기쁘다”고 웃으며 말했다.
◆ 강제철거 위기 넘겨야
내사바는 현재 임차한 땅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인천 검단신도시 택지개발지구로 선정돼 이전을 해야 한다. 인천지방법원이 공고한 자진철거 기간은 이달말까지로 불응 시 강제집행이 이뤄진다. 정 씨는 “나가야 하는 것은 알지만 그동안 이사할만한 경제적 여력이 없어 버티다가 이 지경까지 왔다”고 설명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이사갈 땅을 최근 확보했다는 소식이다. 정 씨는 얼마전 김포 양촌읍 인근에 있는 땅을 계약했다. 농사지이기 때문에 모내기가 끝난 6월부터 착공에 들어가 완공하는 대로 이사할 예정이다. 그러나 건물과 시설 건축에 이사 비용까지, 아직 앞길이 구만리다.
“땅이라도 구해서 다행이지만 다 개인 돈 투자하고 대출받아서 가능했던 거고, 시설비는 별도로 필요하니까 돈을 계속해서 마련해 봐야죠.”
하우스와 울타리, 수돗가, 평상 등 기본시설 설치에 드는 비용만 약 7000만원으로 추정된다. 정 씨는 “카페 회원들 기부금이 3000만원 이상 모인 덕분에 절반 정도는 마련했다”며 “나머지 절반은 어떻게 구하나 싶었는데 회원인 김하나 씨가 후원금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어 큰 힘이 된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온라인에 개설한 내사바 카페에는 많은 사람들이 가입해 후원하고 있다. 개인부터 가족, 동아리 단체까지 매주 최대 100명가량의 봉사자들이 보호소를 방문해 청소와 관리를 돕는다. 6000명이 넘는 회원들은 유기견의 대부대모를 자처해 사료 값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유기동물 230여마리를 모두 보살피려면 후원금만으로 부족하다. 매번 개인 돈을 투자하고 빚을 내 지출하면서 재정적자는 늘어나는 상황이다.
정씨는 유기 동물 보호소의 열악한 상황과 동물관련 보호법의 부재를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직장을 갖고 있으니 이정도라도 할 수 있지, 다른 보호소들의 사정은 더 열악하다”며 “처음에는 자기 돈으로 개들 먹여 살리다가 재산이 거덜나면서 후원금에 의지하다보니 상황이 더 악화된다”고 말했다.
정씨
[디지털뉴스국 김예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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