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일 강원도 홍천 사오랑고개 부근에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발굴팀이 6.25전사자 유해 발굴을 하고있다. |
지난 1일 강원도 홍천군 동면을 지나는 사오랑고개. 젊은 무리의 병사들은 연방 거친 숨을 고르며 발굴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강렬한 햇빛 아래에서 일하다 보니 이들의 얼굴은 이미 검게 그을려 있었다. 바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 소속 병사들이다.
호국영령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현충일을 닷새 앞두고 마음이 더욱 바빠진 듯 국유단 발굴병들의 얼굴 표정에는 “좀 더 속도를 내서 일하자”는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아무리 날씨가 더워도 마스크와 장갑을 반드시 착용해야 해요. 발굴 과정에서 DNA가 섞이면 안 되기 때문이죠.” 한 발굴병이 마스크 사이로 잠시 가쁜 숨을 내쉬며 취재진을 향해 웃음을 보였다. 한 시간 여에 걸쳐 정성스러운 붓질이 이어진 뒤 땅 속에서 거무스름한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국유단 발굴1팀장을 맡고 있는 안순찬 원사의 눈이 빛났다. “팀장님! 유해로 추정되는 개체가 식별됐습니다!” 발굴병의 힘찬 보고에 안 원사가 다가가 조심스럽게 주변 흙과 잔뿌리를 정리했다. 왼쪽 발목뼈로 추정되는 유해가 65년 동안 잊혀진채 땅 속에 묻혀있다가 후손들에 의해 햇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지난 5년 간 안 원사가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찾은 유해는 약 600구. DNA 분석 등을 통해 전사자의 가족을 찾아 유해를 돌려준다. 한국전쟁 당시 사망한 오빠의 유해를 지난 추석 직전 돌려받은 한 할머니의 얼굴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추석을 앞두고 ‘마침내 오빠가 돌아왔다’고 오열하는 여동생 분의 모습을 보고 내 마음도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국유단은 현재 8개 발굴팀으로 구성돼 강원도 홍천과 철원, 경기도 가평과 경상남도 창녕 등 전국을 무대로 활약 중이다. 간부와 병사 등 소속 인력이 200여 명에 이른다. 이와 별개로 34개 사단에서 연 10만 명 규모의 병사들이 유해 발굴 현장을 측면지원하고 있다.
국유단 정예 멤버들이 전사(戰史)연구, 참전용사와 지역주민의 증언을 이용해 유해 발굴 대상지역을 선정하면 지원 사단 장병들이 유해 흔적을 찾는 데 투입된다. 국유단 8개 발굴팀 중 하나인 안 원사팀도 고고학·사학 등을 전공한 7~8명의 병사들이 한 팀을 이뤄 발굴 현장을 누비고 있다.
이날 안 원사팀이 찾은 ‘사오랑고개’는 지난 1951년 5월 ‘벙커고지’로 불리며 치열한 전투가 전개됐던 곳이다. 사흘에 걸쳐 국군과 미군2사단(38연대 3대대)이 중공군 15군과 처절한 전투를 치렀다. 중공군의 춘계 2차 공세에 맞서 고개 일대에 무려 4000여 개의 호를 파고 필사적인 방어전을 펼쳐 중공군의 홍천 진입을 차단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날의 승리를 위해 희생한 참전용사들의 시간은 65년째 이 곳 땅 속에서 멈춰져 있어야 했다. 유해 확보에 성공한 뒤 지형을 살펴보던 발굴팀 관계자는 “(왼쪽 발목뼈로 추정되는 유해의) 이 분은 호 안에서 사망해 흙이 덮히면서 거꾸로 된 상태로 묻혀있으셨던 것 같다”고 말했다. 유해 주변에선 발가락뼈가 고스란히 담긴 전투화 밑창, 탄창안의 못 다 쏜 탄알 등이 함께 발견돼 당시 긴박했던 전투 상황을 짐작케 했다.
발굴작업 후에는 약식제례 절차가 이어졌다. “유해 발굴 활동은 기계로도 할 수 없고, 로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오로지 사람의 손으로만 할 수 있는 숭고한 작업이죠. 아무리 힘들어도 보람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입관의식을 준비하던 방보인 상병의 담담한 소회다.
매일 비포장 산길을 5km 이상 오르내리는 고된 작업이지만 안 원사팀은 하루도 쉴 수가 없는 처지다. 아직도 유해를 수습 못한 6·25 전사자가 북한과 비무장지대 일대에만 4만 여명 안팎으로 파악되고 있다. 여기에 남한 소재 유해(9만 여명)까지 포함하면 총 13만명에 이른다.
지난 2000년 3년간 한시적으로 진행됐던 유해발굴 사업은 이후에도 계속돼 2007년 국방부 산하 상설조직인 현재의 국유단이 설립됐다. 연간 100구 남짓이던 유해 발굴 실적은 국유단 창설 이후 1000건 안팎으로 크게 늘어났다. 지난 2000년부터 지금까지 9100여 구를 수습하며 올해 1만 구 수습을 눈앞에 두고 있다.
안 원사는 “현장에서 느끼는 가장 아쉬운 점은 막상 유해를 찾아도 DNA 신원확인이 어려워 가족을 찾아주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3D스캐너·프린터, 레이저·현미경 분광분석기, 조직검사장비 등 신원확인에 필요한 첨단 장비가 총 동원되지만 유가족들의
안 원사는 “유해발굴사업은 국민과 함께할 때 성공할 수 있다”며 “어렵게 찾은 유해가 꼭 가족을 찾을 수 있도록 유전자 채취 등록이 활성화해야 한다”고 거듭 현장의 바람을 전했다.
[홍천 = 유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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