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포착한 롯데케미칼(옛 호남석유화학)의 해외 비자금 의혹은 원료를 수입할 때 대금을 과다 지급한 뒤 일부를, 거래에 필요하지 않은 중개 업체에 빼돌리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롯데케미칼은 석유화학무역업을 하는 협력업체 A사의 홍콩 법인을 통해 동남아시아산 석유화학원료를 구입하는 과정에서 해외 계열사인 일본 롯데물산을 동원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롯데케미칼이 이같은 방식으로 2010년부터 최소 3년간 300억원대 해외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핵심 계열사인 롯데케미칼이 동원된 만큼 신동빈 회장(61)의 주도로 비자금이 조성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것으로 전해졌다.
◆ 일본 계열사 동원해 해외비자금 조성
검찰이 파악한 롯데케미칼의 원료 수입 과정은 크게 세 단계로 나뉜다. 롯데케미칼은 인도네시아 석유화학원료업체 C사 등으로부터 부타디엔, 열분해가솔린(Py-Gas) 등 석유화학제품 제조에 필요한 원료를 수입한다. A사의 홍콩 법인은 C사와 롯데케미칼의 거래를 연결한다.
검찰은 롯데케미칼이 A사에 거래대금을 지급할 때 일본 롯데물산을 거친 점에 주목하고 있다. 굳이 불필요한 거래과정을 한 단계 추가한 것은 일본 롯데물산에 마진이나 수익 일부를 남기는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하기 위해서라는 판단이다. 이 경우 수익을 해외로 빼돌려 세금을 내지 않고 롯데케미칼의 수익성을 악화한 혐의(특가법상 조세포탈·배임) 등을 적용할 수 있다.
검찰은 특히 롯데케미칼이 신 회장의 ‘경영수업요람’이라는 그룹 내 위상을 주목하고 있다. 비자금 조성 의혹이 구체적인 혐의로 확인된다면 신 회장이 이에 대해 “몰랐다”고 진술한다 해도 형사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구체적인 혐의가 드러난다면 허 사장 역시 형사처벌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편 A사도 횡령 의혹을 받고 있다. 홍콩 법인이 페이퍼컴퍼니라는 의혹과 관련된 문제다. 페이퍼컴퍼니는 계좌 추적이 어려워 기업이 거래자금의 출처를 숨기고자 할 때 주로 이용된다.
이 때문에 롯데케미칼의 비자금 조성 의혹과 무관하게 이 회사 대표 K 씨와 전무 K 씨도 형사처벌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A 사는 홍콩 법인 설립 초기를 제외하고는 실제로 인력을 보내 근무시킨 사실이 없는데도 상당 기간 업무 비용을 회계에 반영하고 실제로는 해당 금액을 횡령한 의혹을 받고 있다.
◆신동빈 주도 M&A로 급성장
롯데케미칼이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해 검찰 수사를 받게 되면서 그룹 내 위상도 다시한번 주목을 받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신 회장이 1990년 경영수업을 시작한 그룹 핵심 계열사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10월 2조5850억원에 삼성그룹 화학계열사를 인수하며 롯데그룹 주력 사업군으로 부상했다. 신 회장은 외부경험을 중시하는 롯데가(家)의 전통에 따라 노무라증권을 거쳐 롯데케미칼의 전신인 호남석유화학에 입사했다.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뒤 1979년부터 호남석유화학에 몸담은 황각규 롯데그룹 정책본부 운영실장(61)이 이 때부터 신 회장을 가까이에서 보좌했다.
롯데케미칼은 신 회장 주도로 인수합병(M&A)을 거듭하며 급성장했다. 1991년 상장된 뒤 현대석유화학(2003년), KP케미칼(2004년), 말레이시아 타이탄(2010년)을 인수했다. 2012년에는 KP케미칼과 호남석유화학을 합병했다. 1990년 2800억원이었던 매출액은 지난해 11조7133억원으로 50배
롯데 대주주 일가 비리를 수사 중인 검찰은 롯데케미칼의 그룹 내 위상과 공격적인 M&A로 성장해온 이력 등을 감안해 수사력을 집중할 계획이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10일 검찰이 롯데그룹 본사와 주요 계열사에 대해 압수수색을 하자 미국 화학회사 ‘액시올’의 인수를 철회한 바 있다.
[이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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