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에 차 떠내려 간다. 어떻게 해, 어떻게 해.”
5일 강한 비바람을 몰고 온 태풍 ‘차바’ 영향으로 2012년 태풍 ‘삼바’ 이후 4년만에 홍수경보가 발령된 울산 태화강. 태화강과 인접한 중구 태화시장 일대는 강한 바람과 함께 시간당 최고 124㎜의 폭우가 쏟아지자 삽시간에 물에 잠겼다. 상가 건물 1층은 대부분은 3분의 2 이상이 물에 잠겼다. 시장 도로를 따라 곳곳에서 냉장고 등 생활 도구가 떠다니고, 물에 휩쓸린 자동차들이 뒤엉켜 아수라장을 연출했다. 태화강 곳곳에서는 둔치에 주차해둔 차량들이 갑자기 불어난 물에 휩쓸려 하류로 떠내려 갔다.
이날 울산에는 새벽부터 낮 12시까지 강한 바람과 함께 3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졌다. 낮 12시께 울주군 청량면에서는 구조 요청을 받고 출동한 온산소방서 소속 구조대원 A씨(30)가 구조 과정에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다. 울주군 반천리 한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도 최모 씨(61)가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갑자기 불어난 물에 휩쓸려 익사한 것으로 보고 자세한 사망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울산지역 산업현장에서도 크고 작은 피해가 발생했다. 현대차 울산2공장은 물이 생산라인까지 들어와 공장 가동을 일시 중단했고, 미처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지 못한 출고 예정 차량 수십여대가 물에 잠겼다. 현대중공업은 강풍과 폭우 때문에 야외 작업이 힘들어지자 작업 대신 실내에서 안전 교육을 실시했다. 울산 앞바다에서 시운전 중인 선박 6척은 태풍 경로를 피해 울릉도로 대피했다.
오전 9시50분 부산에서 출발한 KTX 126호는 울산을 지나 경주로 향하던 중 터널 안에서 태풍에 따른 단전으로 멈춰 섰다. 열차는 비상전원으로 버티다 얼마 가지 않아 에어컨 가동을 중단하고 객실마저 소등돼 승객들이 불안에 떨었다. 이 사고로 KTX 경부선 운행이 중단되기도 했다.
부산에서는 인명 피해가 잇따랐다. 부산 영도구 고신대 공공기숙사 공사장에서는 타워크레인이 넘어져 인근 컨테이너를 덮쳤다. 이 사고로 컨테이너 안에 있던 근로자 오모 씨(59)가 숨졌다. 오씨는 강풍과 비를 피하기 위해 컨테이너로 대피했다가 사고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 수영구 망미동에서는 90대 할머니가 주택 2층에 떨어져 숨졌다. 경찰은 태풍에 따른 사고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강서구 대항동 방파제에서는 어선 결박 상태를 점검하던 허모 씨(57)씨가 높은 파도에 휩쓸려 실종됐다.부산 해운대 마린시티는 태풍에 휩쓸린 바닷물이 아파트 단지를 덮치면서 곳곳이 침수 피해를 입었다. 초속 20m가 넘는 강한 바람이 불면서 부산 광안대교와 남항대교, 부산과 거제를 잇는 거가대교는 오전 한때 차량 운행이 통제됐다.
태풍의 최대순간풍속이 초속 47m에 달했던 제주에서도 인명 피해와 침수·정전 피해가 잇따랐다. 제주항 제2부두에서는 정박 중인 어선에 옮겨타려던 남성 1명이 바다로 떨어져 실종됐다. 제주화력발전소 발전기 1기도 가동이 중단돼 6만 가구가 정전 피해를 입었다.
공항과 항만은 무더기 결항으로 한때 마비됐다. 제주공항을 출발 도착하는 항공편 42편이 결항돼 승객 6500여명이 불편을 겪었다. 항공편과 크루즈 선박의 무더기 결항으로 중국 관광객 4000명은 입국을 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정박중인 어선과 요트도 6척이 전복되거나 침몰했다.
경남 창원 마산 어시장 일대는 도로와 횟집이 침수되고, 정전되면서 수족관 어패류가 죽는 등 피해가 잇따랐다. 태풍 매미 당시 마을 전체가 물에 잠긴 창원 진해구 용원동 일대도 이날 오전 만조시간과 겹치면서 의창수협 인근 마을이 대부분 물에 잠겼다. 주민 고모 씨(41)는 “오전 9시부터 물이 들어차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1층 가슴까지 물이 차올라 대피했다”며 “10여년 전 태풍 매미 때 악몽이 생각났다”고 말했다.
창원지역 국도 25호선 안민터널 인근에서는 토사가 도로로 쏟아져 한때 통행이 제한됐다. 창원 성주도 인근 공단로 일부가 물에 잠겨 차량 등이 침수 피해를 입었다. 거제 대우조선해양은 밀려 든 파도에 일부 시설이 피해를 입었고, 진주 남강유등축제는 임시 휴장
지진 피해 복구가 한창인 경주에도 태풍은 상처를 남겼다. 경주 감포읍은 소하천이 넘쳐 농경지가 침수됐고, 중소기업이 몰려 있는 경주 외동은 공단이 침수돼 근로자들이 고립됐다. 경주 서천 둔치에서는 주차된 차량 수십여대가 갑자기 불어난 물에 잠겼다.
[박동민 기자 / 최승균 기자 / 서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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