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사진=연합뉴스 |
"철새가 옮기는 바이러스를 무슨 수로 막으라는 겁니까. 조류인플루엔자(AI) 피해를 당한 것도 억장이 무너지는데 살처분 보상금까지 뭉텅이로 깎여 앞길이 캄캄합니다"
AI가 발생하면 가금류 농장주들은 억장이 무너집니다. 자식처럼 키워온 닭과 오리를 산 채로 살처분하는 심정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애지중지 운 닭과 오리를 살처분하는 일이 해마다 반복되는 것도 속이 터질 노릇인데 정부의 살처분 보상금까지 대폭 깎이기 일쑤여서 재기를 꿈꾸기도 쉽지 않습니다.
올해 대표적인 AI 피해지역인 충북 음성·진천은 사육하는 오리 마릿수가 많아 일명 '서해안 오리 벨트'의 핵심에 포함된 지역입니다. 2003년 AI가 처음 발생한 이후 한동안 잠잠한 듯싶더니 2014년부터는 해마다 발생하고 있습니다.
올해 두 지역에서 AI가 확진된 농장은 26일 기준 모두 15곳입니다. 이 가운데 9곳은 작년 2∼3월 H5N8형 바이러스가 퍼졌을 당시 AI에 감염됐던 농장들입니다.
정부는 AI 발생에 대한 농장주 책임을 엄격히 묻겠다며 가축전염병예방법을 개정, 살처분 보상금 감액 규정을 대폭 늘렸습니다.
최근 2년 이내에 AI가 재발했을 때는 보상금을 최고 80%까지 감액한다는 규정이 추가됐습니다. 2회 발생 때는 20%, 3회 때는 50%, 4회 때는 무려 80%에 달합니다.
의심 신고를 하루라도 늦게 했을 때도 보상금 총액에서 20%를 빼고 소독을 게을리했을 때는 5%를 더 삭감합니다.
예전에도 보상금 전액을 손에 쥐는 피해 농가가 거의 없었지만 감액 규정이 줄줄이 추가되면서 "차라리 닭, 오리 사육을 접어야겠다"는 농장주들의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철새 도래와 때를 같이해 AI가 연례행사처럼 발생하는 서해안 지역 농민들의 불만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박광식 대한양계협회 전북도지회장은 "AI는 철새가 전파하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질병'인데 피해자인 가금류 사육농가에 책임을 묻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소독을 제대로 하지 않았거나 사육 중 관리를 잘못해 발생한 것이라면 농장주가 일정한 책임을 지는 게 맞지만 AI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는 얘기입니다.
박 회장은 "AI가 발생하면 제값을 받기도 어렵고 6개월가량 입식도 할 수 없어 재기하기가 어렵다"며 "정부가 AI 피해 보상이라도 100%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백신도 없는 탓에 소독약만으로 방역을 차단하는 처지라 방역에 한계가 있는데도 정부가 힘이 없는 농장에 AI 확산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전남의 한 가금류 사육 농민은 "구제역이야 백신 접종을 게을리했을 때 보상금을 감액한다고 하지만 백신도 없고, 철새가 퍼나르는 AI 발생 책임을 농가에 떠넘기는 것은 가혹하다"며 "AI가 재발했다는 이유로 보상금을 대폭 감액하는 것은 농민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러면서 "백신도 없이 소독만으로 AI를 막으라는 것은 폭탄을 떨구는 비행기를 소총으로 막으라는 소리"라고 울분을 쏟아냈습니다.
충남 천안의 한 농장주도 "작년 오리 1만5천 마리를 땅에 묻었을 때 이것저것 제하고 나니 손에 쥔 것은 고작 500만원이었다"며 "그러고도 입식을 하지 못하고 7개월을 쉬면서 고생했다"고 언성을 높였습니다.
경기 안성에 사는 육모씨는 올가을에는 아예 오리를 키우지 못했습니다. 여름철 무더위로 새끼오리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지난달 입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육씨지만 요즈음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는 AI를 보면 울화통이 터집니다.
두 해 전 안성에서 AI가 터지면서 새끼오리 7천 마리를 살처분했던 그가 당시 보상비로 손에 쥔 돈은 500여만원에 불과했습니다.
그는 "보상금이 나온다고 하지만 일단 AI가 발생하면 농장 입장에서는 큰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보상비를 감액하고 계열화 업체가 떼어가면 인건비조차 건지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AI 피해 보상 방식 개선을 요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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