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다섯번째 촛불이 켜진 26일 집회는 기발한 풍자와 패러디의 향연으로 마치 축제를 방불케 했다.
번뜩이는 시민들 아이디어는 첫 눈과 함께 몰아친 추위에도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선 광화문 160만 인파(주최측 추산)를 미소짓게 했다. 참가자들은 독창적인 깃발과 손 피켓 등을 만들어 박 대통령과 최순실 씨를 풍자하거나 그들의 발언을 패러디했다.
최순실 사태와 관련한 주요 인물들은 패러디의 ‘단골 메뉴’다. ‘박근혜하야 새누리해체 예술행동단 맞짱’ 소속 배우 김한봉희씨(34)는 최씨 닮은꼴로 화제가 됐다. 김씨는 최씨를 연상시키는 흰색 셔츠에 검은색 선그라스를 머리 위에 얹고, 스마트폰을 보는 포즈를 취해 집회 참가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박 대통령 가면을 쓴 채 포승줄에 묶인 사람도 김씨와 함께 했다.
기발한 이름의 단체 깃발들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박 대통령의 이름을 빗대 만든 ‘퇴근혜’ 깃발과 결혼정보업체 이름을 패러디한 ‘하야해 듀오’ ‘얼룩말연구회’ ‘범야옹연대’등은 시민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낮부터 광화문에 소를 타고 나타났던 한 시민은 오후 8시경 내자로타리를 지나 청와대 쪽인 통의로터리쪽으로 올라갔다. 시민들은 소를 탄 시민을 위해 길을 터줬다. 소의 등에는 빨간색 글씨로 ‘근혜씨 집에 가소’ ‘근혜씨 하야하소’ 등 ‘소’로 끝나는 문구를 붙였다.
청와대 약물 의혹을 풍자한 ‘청와대 주사파척결 운동연합’도 등장했다. 청와대가 예산으로 발기부전제 비아그라를 “고산병 예방약으로 샀다”고 해명한 것을 비꼬는 ‘한국 고산지 발기부전 연구회‘와 ’고산병 연구회‘ 등도 있었다. 이를 패러디해 푸른색 마름모꼴 알약 모양을 그려 넣고 ’청와대, 제발 비워주그라‘ ’나만 비아그라 없어‘ ’하야 하그라‘ 등이라고 쓴 깃발도 눈길을 끌었다.
가벼운 풍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4·16연대 등 세월호 관련 단체들은 대형 풍선을 하늘에 띄웠다. 이들은 노란색 종이배 한 척과 아이들처럼 보이는 조형물들이 붙어 있는 대형고래 모양 풍선을 띄웠다.
이날 집회에는 가수 양희은씨와 안치환씨 등 연예인들도 다수 참여해 시민들과 함께 촛불을 들었다.
특히 양씨는‘아침이슬’, ‘상록수’ 등 자신의 대표곡을 열창해 시민들의 호응을 받았다. 그가 상록수의 마지막 부분인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대목을 부를 때, 청중들이 떼창으로 화답해 장관을 연출했다. 일부 참여자들은 감동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5차례에 걸친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 규탄집회‘를 통해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축제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한국만의 고유한 집회문화가 정착됐다고 설명한다. 이를 통해 추운날씨 등 물리적인 제약과 한달넘게 이어지는 집회의 피로도를 극복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역사상 150만 명 이상이 지속적으로 한 지역에 모이고 있는 것 자체가 전 세계적으로 유래 없는 일”이라며“시민들이 집회를 평화적으로 이끌어가자는 의식을을 공유하면서 다양성이 분출돼 한국만의
[황순민 기자 / 양연호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