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전파 우려에 귀성길 걱정…설 앞둔 농심 '우울'
↑ 사진=연합뉴스 |
"설이 코앞인데 막막합니다. 생활비까지 바닥났는데 생계지원금은 깜깜무소식이고, 이동을 자제하라는 문자만 계속 날아옵니다."
조류 인플루엔자(AI)로 최악의 피해를 본 가금류 사육농가가 민족 최대 명절인 설을 앞두고 깊은 시름에 잠겼습니다.
출하를 앞둔 닭·오리가 모두 살처분돼 차례상 차릴 비용마저 여의치 않은데 금방 지급해준다던 생계지원 자금은 아무런 소식도 없습니다.
AI 확산을 막기 위한 이동제한 조치로 옴짝달싹할 수도 없습니다. 사태가 급속히 진정되지 않는 한 거대한 '가금류 공동묘지'로 변한 농장에서 침출수 피해를 걱정하며 설을 맞아야 할 처지입니다.
충북 음성군 맹동면에서 육계 14만 마리를 키우던 박모(61) 씨는 요즘 하루하루를 한숨으로 보냅니다. 이동 제한 조치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텅 빈 축사를 소독하는 게 전부입니다.
키우던 닭을 모두 살처분했지만 정부나 지자체에선 아무 연락도 없습니다.
보상금은 물론 금방 지급한다던 생계지원금도 해가 바뀌도록 꿩 구워 먹은 소식입니다.
답답한 마음에 군청에 전화를 걸어보지만 "위(정부)에서 내려온 지침이 없다"는 대답만 돌아옵니다.
박 씨는 "돈이 바닥나 생활비 한 푼 없는데 설은 다가오고 입이 바짝바짝 마른다"며 "청주에 사는 아들에게 이번 명절에는 집에 오지 말고 서울 형님댁으로 가라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AI 피해를 보지 않은 농가도 사정이 다르지 않습니다.
박모(59·음성군 맹동면 마산리) 씨는 다행히 AI 음성 판정을 받아 육계 18만 마리를 가까스로 출하했지만, 재입식을 못 해 일손을 놓고 있습니다.
이동제한에 걸려 왕겨도 들여오지 못하고 거름 작업을 할 수도 없습니다.
박 씨도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사는 딸에게 이번 설은 서울 큰집에서 쇠라고 할 참입니다.
농림축산식품부를 비롯한 정부와 각 지자체는 차량과 사람 이동이 많은 설 대목을 앞두고 AI가 다시 크게 번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대책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방역당국은 통제초소와 거점소독소 운영을 강화하는 한편, 귀성객들이 농장이나 축사 접근을 자제하도록 계도활동에 들어갔습니다.
특히 계란 수거를 위해 관리자가 농장 안에서 생활하는 산란계 농장에 대한 행정지도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AI 주요 피해 지역 중 한 곳인 음성군 관계자는 "피해 규모가 워낙 커서 방역 당국과 사육농가 모두 경황이 없다"며 "가뜩이나 신경이 곤두선 상황에서 찾아온 명절이 반가울 리만은 없다"고 전했습니다.
AI가 발생 한 달 보름을 훌쩍 넘겨 설을 코앞에 두고도 진정 기미를 보이기는커녕 사태가 계속 악화하자 피해 농가를 중심으로 당국의 허술한 대응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하늘을 찌릅니다.
동물복지농장 인증 국내 1호인 동일농장 홍기훈(57) 대표는 "정부의 안일한 대응으로 최악의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며 "예찰서 제출 요구 등 형식적인 조처 대신 신속한 살처분, 살처분 투입 인력의 철저한 위생관리 등 기본적이고 근본적이고 대응부터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홍 대표가 운영하는 농장 5곳 중 1곳인 음성군 삼성면 농장도 지난달 AI 피해를 봤다. 이곳에서 키우던 산란계 1만3천 마리도 모두 살처분됐습니다.
인근에서 AI가 발생했는데도 살처분 지연 등 늑장 대응으로 피해를 봤다는 게 그의 주장입니다.
농장 직원 15명도 모두 외부 출입이 전면 통제된 채 안에서만 지낸다. 번갈아 나가던 명절 휴가도 이번 설에
홍 대표는 "정부는 축사 현대화란 명분으로 이뤄진 밀집사육 권장 등 그동안 한 일은 생각하지 않고 책임을 철새와 농가에 떠넘긴다"며 "살처분한 닭·오리를 묻을 땅도 없는 상태에서 설을 맞아야 할 농민들 마음은 까맣게 타들어 간다"고 하소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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