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건의 범죄가 일어나 1000명을 검거한 경찰서가 우수합니까?"
지난해 12월 30일 만난 김한호 형사의 질문은 처음부터 날카로웠다. 잠시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김 형사는 되물었다.
"10건의 범죄가 일어나 7명을 검거하는 곳이 더 훌륭하지 않을까요?" 그는 확신에 차있었다.
'검거보다 예방이 우선'. 당연한 말이지만 어느새 우리 사회는 충격적인 사건 발생과 해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충격적인 사건은 신문의 1면을 차지하고 그 해결사는 영웅이 된다.
하지만 그 이면 속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회를 지탱하는 이들이 있다. '청소년 대상 범죄예방 과 직업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김 형사도 그런 이들 중 하나다.
그는 서울지방경찰청 형사과 과학수사계에서 근무하는 20년차 베테랑 형사다. 수많은 범인을 잡은 김 형사가 검거가 아닌 예방에 몸을 내던지게 된 것은 5년 전쯤.
김 형사는 지역 범죄의 상당수를 청소년이 저지르고 있다는 데, 안타까움을 느꼈다. 극악무도할 것만 같던 강도 용의자를 잡고 보면 주로 10대들.
"그 아이들은(청소년 용의자) 범죄가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고 있어요."
김 형사는 그들의 법의식 수준에 경악했다.
교육 심리학자인 콜버그의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시기에 있어서 청소년 시절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미래 사회의 준법의식이 있는 성숙한 시민의 모습은 청소년기 가치관 형성에 따라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비슷한 또래의 자녀들을 두었기 때문이었을까. 사비를 털어 청소년 법의식 향상 교육을 시작했다. ‘이상한 짓 하느라 업무 소홀히 한다’는 말 듣기 싫어 잠도 줄였다. 김 형사는 한, 두 끼로 하루를 때운다고 밝혔다.
열의에 차서 시작한 일이지만 과정은 험난했다.
"거기 두고 가세요." 김 형사가 해당 프로그램을 처음 설명하려고 갔던 교육지원청에서 들은 말이다.
"한번 발표만 하게 해 달라."
중년의 지긋한 나이에 아쉬운 소리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라고 묻자 "그래도 해야 했다"고 답했다. 똑바로 바라보는 눈엔 소명 의식이 느껴졌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혼자 시작했던 일은 어느새 수십 명의 동료 경찰들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이 됐다. 김정훈 서울지방경찰청장과 반기수 형사과장 등의 내부 지원도 이어졌다. 그 결과, 송파, 수서 지역의 청소년 범죄율이 11.6% 감소했다.
"이제는 좀 쉬셔도 되지 않을까요?" 농담 식으로 건넨 질문에 김 형사는 고개를 강하게 저었다.
"청소년은 제 관할 구역에만 있지 않습니다."
그는 이 프로그램이 전국적으로 시행될 필요성이 있다며, 학술적 근거자료를 만들기 위해 책도 쓰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해당 프로그램은 강남, 송파, 서초, 강동 네 개 지역에서만 시행되고 있다.
"그는 침묵의 수호자이고 어둠 속의 기사란다." 영화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베트맨을 두고 하는 말이다. 아무도 조명하지 않는 그늘에서 활약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영웅이라는 데엔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토를 달지 않
"사비를 얼마나 쓰셨느냐"는 질문에 김 형사는 멋쩍게 웃었다. "그거 나가면 집 사람이 화낸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며 화제를 돌렸다.
"이 프로그램이 알려져 전국적으로 시행되면 그뿐."
지천명을 앞둔 새치 지긋한 중년, 그의 모습에서 베트맨이 보였다.
[MBN 뉴스센터 홍태화 / mbnreporter01@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