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장군이 물러가는 '입춘'…기원글 쓰는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
↑ 입춘대길/사진=연합뉴스 |
"입춘(立春) 때 붙이는 글은 매양 한 수의 시(詩)로써 문에다 붙이는 것은 불가하다. 문은 하나가 아니며 시를 짓는 자도 많으니, 지금 이후로는 문신으로 하여금 각각 지어서 붙이게 하라."
조선 성종 13년(1482년) 입춘을 맞아 조정의 신하들에게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세상에는 문도 많고, 글을 지을 줄 아는 자도 많으니 각자 글을 써서 문에 붙이라는 지시였습니다. 이날부터 도성의 문과 기둥에는 다양한 문구가 적힌 종이가 나붙었을 터입니다.
4일은 24절기 중 첫 번째 절기이자 봄이 시작된다는 입춘입니다. 동장군의 위세에 눌렸던 만물이 따뜻한 볕을 받아 기운을 되찾는 날입니다. 옛사람들은 입춘이 되면 복을 기원하는 글을 써서 대문이나 문설주에 붙였습니다.
궁궐에서는 문관이 정월에 임금에게 바치는 시인 '연상시'(延祥詩) 중에 좋은 작품을 골라 연잎과 연꽃무늬가 있는 종이에 써서 기둥과 난간에 부착했습니다. 이를 '춘첩자'(春帖子)라 했습니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유득공이 쓴 '경도잡지'(京都雜志)에는 입춘이 되기 열흘 전쯤 승정원에서 문신들에게 시를 짓도록 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시가 모이면 집현전·홍문관·규장각 등의 종2품 관직인 제학이 채점을 했습니다.
민간에서는 입춘방(立春榜), 입춘첩(立春帖), 입춘서(立春書)라고도 하는 '입춘축'(立春祝)을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입춘축에 쓰는 문구는 대부분 대구를 이루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입춘을 맞아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기를 바란다는 뜻의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입니다.
이외에도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은 편안하며 집집이 넉넉하다는 의미를 가진 '국태민안 가급인족'(國泰民安 家給人足), 문을 열면 복이 들어오고 땅을 쓸면 황금이 나온다는 '개문만복래 소지황금출'(開門萬福來 掃地黃金出) 같은 문구를 입춘축에 썼습니다.
또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기 위해 용(龍)과 호(虎) 자를 종이에 각각 적어서 거꾸로 대문에 붙이기도 했습니다.
입춘에는 특별한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했습니다. 궁중에서는 경기도의 산간 지방에서 딴 미나리싹, 무싹 등에 겨자즙을 넣고 무친 '오신반'(五辛飯)을 수라상에 올렸고, 민간에서도 봄기운을 느낄 수 있는 햇나물을 먹었습니다.
지역별로 독특한 입춘 문화도 있었다. 제주도에서는 풍년을 희망하며 입춘굿을 벌이고, 서울과 경기도를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는 보리뿌리로 그해의 풍흉을 예측하는 보리뿌리점을 봤습니다.
입춘이 봄의 시작이라지만, 다음 절기인 우수(2월 18일)와 경칩(3월 5일)까지는 추위가 완전히 가시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입춘과 관련된 속담 중에는 '입춘에 장독 깨진다', '입춘 거꾸로 붙였나', '입춘 추위는 꿔다 해도 한다' 등 추위를 원망하는 것이 유독 많습니다.
현대에 들어서면서 입춘은 절기로서의 기능을 상실했지만, 입춘축을 붙이는 풍습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4일 서울 남산 한옥마을, 수원박물관, 안동민속박물관 등 각지의 문화시설에서는 방문객에게 입춘축을 나눠주는 행사를 진행합니다.
입춘을 시작으로 봄의 절기는 우수(雨水), 경칩(驚蟄), 춘분(春分), 청명(淸明), 곡우(穀雨)로 이어집니다. 여름 절기는 입하(立夏),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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