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한 중소기업의 주물공장 공사장 현장. 바닥기초공사 작업이 완료된 후 일부 생산설비가 들어서고 있는 공사장 내부에는 십여 명의 작업자들이 공장 외벽과 문을 설치하는 등 막바지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공장 내부 한 켠에는 몇몇 작업자가 어린아이 키 만한 LPG통과 공업용 산소통을 옆에 두고 철제물을 절단하는 작업(산소절단·용단) 작업을 하고 있었다. 용접기와 철판 사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똥들이 사방팔방으로 튀었다. 대부분의 불똥은 작업자 주변에 떨어졌으나, 일부는 불씨가 살아있는 채로 5m 이상 날아가기도 했다.
한눈에도 아슬아슬한 위험한 작업이었지만 주변엔 그 흔한 소화기 하나 찾아 볼 수 없다. '임시소방시설이 갖춰져 있냐'는 기자 질문에 용단 작업을 하던 최모(34)씨는 "그런 것 일일히 갖추고 언제 작업을 다 할 수 있겠냐"며 "소화기는 차 트렁크에 있는데 꺼내놓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공장 내부에는 유리솜으로 채워진 판넬들도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불똥이 판넬 사이에라도 들어가면 순식간에 불이 옮겨 붙을 수 있는 상황이다. 원청업체 측 현장 관리자도 두세 명 공사현장을 오가곤 했으나 작업자들에게 주의를 주기는 커녕 말을 거는 경우도 볼 수 없었다.
엄밀하게 얘기하면 이 곳 공장에는 소화기를 비롯해 스프링클러 등 간이소화장치·비상경보장치·간이피난유도선 등 4종의 화재대비 시설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정부가 지난 2014년 5월 발생한 경기 고양종합터미널 용접중 화재로 9명이 사망하고 60명이 다치는 대형참사가 빚어지자 이후 개정한 '임시소방시설 설치' 법령 때문이다.
일정 조건의 공사현장에 소화기·간이소화장치·비상경보장치·간이피난유도선 등 4종의 임시소방시설을 설치하도록 관련법을 개정해 2015년 1월8일부터 시행한 것이다. 화재진압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화재로 인한 대형참사를 막기 위해서였다. 5년간 신축 공장 등에서 용단·용단 작업을 해왔다는 최씨는 "그런 법이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다른 공사현장도 지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행 2년이나 됐지만 법을 지키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얘기다.
지난 4일 4명의 사망자 등 총 51명의 사상자를 낸 화성 동탄 메타폴리스 뽀로로파크 화재 사건 당시에도 기존 건물에 설치된 스프링클러·경보기는 현장에 있었지만 소화기와 간이피난유도선은 없었다.
경찰조사에선 이미 건물 관리업체 측이 공사 전 스프링클러와 경보기 등을 꺼놓은 사실이 드러났다. 만약 해당 공사 현장에 인근에 소화기가 비치돼 있고 간이피난유도선이라도 있었더라면 작업자들이 초기에 화재를 진압하거나 빨리 현장을 벗어나 피해규모가 줄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사현장 임시소방시설 관리 책임을 지고 있는 관할 소방서 측은 8일 매일경제와 통화에서 "뽀로로파크 공사 현장은 법적용 대상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뽀로로파크의 경우 단순 인테리어 철거 공사였기 때문에 임시소방시설 설치 대상 공사현장인 '건축·대수선·용도변경' 현장이 아니었고 법적용이 불가했다는 얘기다. 스티로폼 등 가연성 물질이 주변에 가득한 가운데 용접 작업이 진행되도 손닿는 곳에 소화기 하나 없었던 이유다.
그러나 매일경제가 해당 법률과 시행령을 확인한 결과 '공사 현장에서 인화성 물품을 취급하는 작업', '용접·용단 등 불꽃을 발생시키거나 화기를 취급하는 작업' 등을 하기 전에는 5m 이내에 임시소방시설을 설치해야 한다고 분명히 명시돼 있었다. 애매한 법령과 법을 해석하는 관청의 소극적인 자세 등이 결합돼 멀쩡히 있는 법령조차 사
김엽래 한국화재소방학회장(경민대 교수)은 "안전을 위해 단순 철거공사라 하더라도 임시소방시설 설치를 할 수 있도록 법이 다시 개정돼야 한다"며 "건설사와 시공사들의 화재사고 안전에 대한 인식이 아직도 후진국 수준인 점도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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