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연합뉴스 |
숱한 논란과 반목 속에 추진된 국정 역사교과서가 결국 3년 전 교학사 교과서 사태의 판박이로 막을 내릴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교육계에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역사 전쟁을 끝내기 위해 차제에 역사교육 방법의 근본적 전환을 위한 합의의 틀을 만들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19일 교육부에 따르면 국정교과서 사용을 위한 연구학교를 신청했던 경북지역 3개 학교 가운데 오상고는 학내 반발로 신청을 철회하고 경북항공고는 심의에서 탈락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문명고 역시 학생과 학부모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학부모 측에 '23일까지 시간을 달라'는 의견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학교마저 신청을 철회하면 연구학교 신청이 '전무'하게 되는 셈입니다.
교육부는 당초 국정 역사교과서를 올해 3월부터 전국 중·고교에 일괄 적용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극심한 반대 여론과 때마침 터진 '최순실 사태'까지 겹쳐 교육부는 올해 전면 적용 계획을 포기하고, 대신 희망 학교에 한해 연구학교 형태로 교과서를 시범 사용하게 하는 것으로 변경했습니다.
일단 연구학교를 통해 교과서 내용 검증을 받겠다는 게 교육부 설명이었습니다. 사전 조사 결과 희망 학교가 전국 중·고교의 20%가량은 될 것이라는 계산도 깔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교육부의 이러한 계산은 완전히 빗나간 셈이 됐습니다.
물론 교육부는 연구학교 신청 과정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외부단체'가 학내 의사 결정권을 '방해'했다는 시각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교육부는 전교조가 대법원으로부터 법외노조 판결을 받은 점을 들어 정식 교원단체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준식 장관은 10일 기자회견에서 연구학교 신청이 저조한 이유가 교과서 자체의 문제 때문인지, 교육청이나 전교조 등 비협조 때문인지를 묻는 질문에 "(비협조가)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판단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른바 '샤이 국정화 찬성론자'들이 상당수 있지만 전교조 등 압박과 비판 여론이 두려워 국정교과서를 쓰겠다고 자청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역사에 대한 하나의 시각을 국가가 정해 책에 넣겠다는 시대착오적, 비상식적 발상 자체가 일으킨 국민적 거부감이 워낙 강했기 때문이라는 게 공통된 지적입니다.
또 '내용을 보지도 않고 비판한다'던 교육부 주장이 무색하게도 교과서 최종본이 공개되자마자 수백건의 내용 오류 및 오탈자, 비문 등이 발견되면서 부실 제작 논란이 일었습니다.
진영 논리를 떠나 당장 현장에서 이 교과서로 아이들을 가르쳐야 할 교사들로부터는 "교과서의 기능적 측면에서 국정교과서는 낙제점"이라는 비판도 쏟아졌습니다.
이렇듯 국정교과서가 현장에서 철저히 외면당한 결과는 내년에 국정교과서를 학교에서 정식 채택하게 하는 과정에서도 재연될 것으로 보입니다.
교육부는 내년부터 국정과 여러권의 검정교과서 가운데 학교가 하나를 선택해 사용하게 할 계획인데, 지금 상황대로라면 국정교과서를 선택할 학교가 전무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2014년 초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사태의 판박입니다.
뉴라이트 등 보수학자들이 주축이 돼 만들어진 교학사판 한국사 교과서가 2013년 8월 검정 심사를 통과하자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라는 반발이 일었고, 결국 이듬해인 2014년 1월 이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는 전국에서 단 1곳에 그쳤습니다.
교육계에서는 이러한 소모적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 차제에 역사교육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사회적 합의를 시도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적용 시기를 역사(한국사) 과정에 한해 2020년쯤으로 아예 미루고 좌우 편향 논란이 없게 교육과정과 집필기준을 다시 만들자는 것입니다.
역사교육연구소 김육훈 소장(독산고 교사)은 "편향성 논란이 반복되지 않도록 교과서를 다양한 해석이 담긴 토론형 자료로 다시 개발하는 등 교과서 내용과 형태, 이에 따른 평가방식
김 소장은 "교육과정 적용 시기를 늦추는 것은 고시만 변경하면 되므로 장관 마음먹기에 달렸다"며 "올해는 사회적 합의의 해로 삼아 논의한 뒤 그 결과를 바탕으로 내년 3월에 다시 검정 공고를 하는 방안을 제안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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