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때는 전교 1등하면 서울대 전자공학과에 갔다. 그게 오늘의 삼성전자를 만든 원동력이 됐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전국 의대를 다 채우고 난 다음에 서울대 공대를 간다. 혀를 찰 게 아니라 의료바이오가 삼성전자 역할을 하도록 하면 될거 아닌가. "(모 제약회사 CEO)
한국은 의사 선망 사회다. 대학입학 점수에서 의대가 부동의 1위를 차지한지도 20년 가까이 되어간다. 인재가 공대를 기피하는 현상을 놓고 '망국론'이 나오기도 했지만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니다. 의대에 우수한 인재가 몰리고 그 결과 의료산업이 융성해 그곳에서 일자리가 생겨난다면? 꿩잡는 게 매다. 좋은 일자리가 반드시 반도체나 자동차 산업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매일경제와 롤랜드버거가 함께 만든 '제2한국보고서(D-checking Korea)'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하나만 한다면 의료산업을 건드려야 한다"고 제안한다.
왜 그런가. 일단 의료산업의 일자리 창출 능력이 제조업을 압도한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의료서비스 취업유발계수는 14.7명으로 자동차 8.8명, 반도체 3.2명을 크게 앞선다. 10억원의 재화를 생산하기 위해 직간접적으로 고용되는 취업자수가 반도체의 4.6배에 이르는 것이다. 공정 자동화에 따라 제조업의 고용창출 능력은 계속 하락하는 추세이고 '고용없는 성장'이 보편화한 지금 새로운 일자리는 결국 의료를 비롯한 서비스업에서 찾아져야 한다.
둘째, 한국은 아직 의료산업 인력비중이 작은 나라다. 전체 고용에서 보건의료분야 취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독일이 11.7%, 미국이 7.7%, 일본이 8.9%인데 비해 한국은 3.7%에 불과하다. 그만큼 이 분야에서 취업자가 늘어날 여지가 많다는 얘기가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14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임상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1명으로 OECD 평균(3.2명)보다 1.1명 적었다. 전체 회원국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임상간호사 수는 인구 1000명당 4.8명으로 평균(9.3명)의 절반 수준이다.
셋째, 고령인구 급속 증가 및 글로벌 헬스케어 산업 성장에 따라 새로운 직업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이 의료산업이다. 정부는 원격진료코디네이터와 유전학상담전문가, 의료일러스트레이터, 의료소송분쟁조정사, U헬스전문가, 의료빅데이터 전문가 등이 조만간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접하게 되는 직업군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외국인 환자 유치가 지금보다 많아지면 국제의료담당 의사와 간호사, 해외사업 홍보마케터, 국제보험 담당자로 직업 세분화가 진행될 것이다.
더불어 우리나라 의료관광산업은 여전히 잠재력이 있다. 전체 의료기술수준과 품질은 미국·유럽 등 최선진국의 80~90% 수준이고 암질환·간이식·미용성형·건강검진 등 일부 영역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의료가격은 한국을 100으로 했을때 미국 338, 일본 140, 싱가포르 105로 가격경쟁력이 있다. 3시간 비행거리 이내에 인구 100만 이상 도시 61개가 위치한 지리도 강점이다.
한국 의료산업은 그러나 벌써 10년도 넘게 기대주로만 머무르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규제가 문제다. 원격의료, 건강관리서비스, 의료관광 및 병원해외진출, 고령친화산업 등 새로운 사업기회들이 크고 작은 규제에 짓눌려 도무지 뻗어나가지 못하고 있다. 원격진료를 예로 들면 의사 대 의사, 의사대 의료인간 원격진료만 허용될뿐 환자 직접 진료는 허용될 기미조차 안보인다.
의료계 관계자는 "영리의료법인, 원격진료 등이 이념적 프레임에 갇히면서 의료산업화 기회를 번번이 살리지 못했다"며 "다음 정권 초기에 최우선 개혁과제로 의료산업을 들여다봐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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