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남곤 대표 |
단일 도매시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서울 송파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가락시장)에서 '수산물 판매왕'으로 불리는 백남곤 세림씨푸드 대표가 건넨 명함에는 '생선 디자이너'라고 적혀있었다. 살짝 웨이브가 들어간 헤어스타일에 콧수염까지 기른 그의 첫인상은 디자이너나 예술가처럼 보였다.
"지금은 고등학생이 된 아들이 초등학생 때 선생님이랑 친구들이 아버지 직업을 궁금해 한다면서 '아버지는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었습니다․ 당시 저는 가락시장에서 생선 배달을 하고 있었는데, 아들에게 수산물 판매업자라고 말해야 할지 유통업자라고 설명해줘야 할지 고심했습니다. 아들에게 친구나 선생님이 아버지 직업을 물어보면 '우리 아버지는 생선디자이너입니다'라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남들에게 저를 생선디자이너로 소개했지요."
1998년 가락시장에 발을 들여놓은 백남곤 대표는 배달부터 시작해 최고의 자리까지 오른 국내 수산업계를 대표하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2012년 서울시농수산물공사에서 선정한 수산물 판매왕 1위가 된 후로 지금까지 왕좌를 지키고 있으며, 3400여 명에 달하는 가락시장 전체 중도매인 종합평가에서 지난해 1위를 차지했다. 설립된지 10년이 채 안 된 세림씨푸드의 연매출액도 약 200억원에 달할 만큼 강소기업으로 키웠다.
"처음 판매왕이 됐던 날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가락시장에 입성했을 때 최고가 되겠다고 다짐했는데 그 날 저는 꿈을 이뤘습니다. 학비·생활비를 벌기 위해 대학생 때 밤부터 새벽까지 군밤 장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판매왕이 되던 날 아내와 함께 군밤 장사를 했던 곳에 가봤습니다. 그동안 힘들었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더군요. 꿈을 이뤘다는 생각에 그 날 거기서 많이 울었습니다."
백 대표는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가기까지 숱한 고통과 시련을 이겨내야만 했다. 전남 장흥 출신인 그는 고등학생 시절 대학에 진학하겠다는 꿈을 꿔본 적도 없을 만큼 가난했다. 스무 살이 되던 해인 1990년 '돈을 벌겠다'며 인천으로 무일푼으로 올라와서 공장, 당구장, 뷔페, 건설현장 등 온갖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당구장에서 아르바이트 할 때는 당구대에 이불 깔고 자면서 거의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당구장에서 일하면서 제 또래의 대학생들을 봤는데, 그들이 생각하는 바가 저와 너무 다르다는 사실에 충격 받았습니다. 당장 입에 풀칠하기에도 급급했지만 공부를 하고 싶었습니다. 당시 자투리 시간을 내서 비파괴검사 자격증 취득 공부를 하고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자격증을 땄는데, 이 자격증을 활용해서 갈 수 있는 대학교인 안양 소재 한 전문대학교에 뒤늦게 입학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그의 아르바이트 생활은 지속됐다. 낮에는 공부를 하고 밤에는 학교 근처에서 군밤 장사를 했다.
"처음 장사할 때 친구들이 알아볼까봐 너무 창피했습니다. 의기소침해서 호객행위도 못하니까 하루에 1만원어치 파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이러다 큰일나겠지 싶어서 정신 차리고 재미있는 멘트도 날리면서 장사를 했더니 한 명, 두 명 손님이 오기 시작하더군요. '아~ 돈은 이렇게 버는 거구나' 생각했습니다. 이때의 경험이 저를 가락시장으로 이끌었지요."
◆ 50㎏도 안 되는 왜소한 체구로 하루 80톤 배달
'가장 빨리 배달하고, 가장 친절한 사람' 되자는 각오로 가락시장 평정
백 대표는 이후 한 기업에 취업해서 1년 정도 직장생활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살다가는 평생 가난할 것만 같았다. 그는 1998년 '장사를 제대로 배워보자'며 무작정 가락시장으로 갔다. 당시 몸무게가 50㎏도 안 나갈 정도로 왜소해 '다른 곳에 가서 일을 알아보라'며 퇴짜를 받았지만 '덩치 큰 사람보다 일을 더 잘할 수 있으며, 일을 못하면 급여를 안 줘도 된다'고 사장을 설득해 한 생선 도매업체에 겨우 취업했다.
그는 가장 빨리 배달하고 가장 늦게까지 일하며, 가장 친절한 배달맨이 되자는 각오로 밤 11시부터 이튿날 오후 2, 3시까지 일했다. 바닥에 있는 상자를 들어올려서 손수레에 싣는 무게만 하루 80톤에 달했으며, 매일 40㎞ 이상 걷거나 뛰었다. 그의 바지는 종아리부분부터 허벅지까지 항상 흙탕물로 범벅돼 있었다.
"한번은 시장에 진입하던 한 운전자와 제 배달 손수레가 맞닥뜨렸는데, 배달이 급했던 저는 운전자한테 차를 빼라고 말했습니다. 근데 그 운전자가 제 뺨을 때리더군요. 그 순간 화가 나기보다는 저를 기다리고 있을 고객이 먼저 떠오르더군요. 고객이 기다리는 시간을 1분이라도 줄여드리기 위해서 배달 먼저 했습니다."
매 순간 고객을 먼저 생각하고 행동했던 백 대표의 성실함과 정성에 감동한 고객들은 그를 얼마 지나지 않아서 최고의 배달맨으로 뽑았다. 그를 신뢰하기 시작한 고객들은 배달 담당인 그에게 주문까지 했다. 그가 배달한지 2년 정도 됐을 무렵 사장은 그에게 배달 대신 장사를 시켰다. 배달 업무는 사장이 맡았다.
백 대표가 본격적으로 장사를 시작하면서 가게 매출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사장은 그에게 가게를 물려주겠다고 약속했다. 사장 말을 100% 믿은 것은 아니지만, 그는 '내 가게다'라고 생각하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일했다. 현실적으로 사장 아들이 가게에 와서 일하고 상황에서 사장이 그에게 가게를 물려줄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결국 그는 2008년 독립해서 세림씨푸드를 차렸다.
"가락시장에는 강동수산, 수협공판장, 수산건어물 등 세 개의 도매법인이 있는데, 강동수산이 가장 큰 곳입니다. 강동수산에 둥지를 트려고 하니까 전 가게 사장님 등 여러 사람들이 온갖 방해를 하더군요. 저는 줄곧 강동수산에서 장사해 와서 제 고향과 같은 곳이었지만, 수협공판장에 가게를 냈습니다. 당시만 해도 수협공판장은 죽어가는 상권이었습니다. 강동수산 상인들이 저한테 곧 망할 것이라며 손가락질 하더군요. 근데 장사 첫 날만 8만원 적자봤고 이튿날부터 계속 순익을 냈습니다. 그러자 강동수산에서 와달라고 러브콜이 오면서 상황이 바뀌더군요. 나중에는 강동수산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 상도덕 준수와 정직함이 고객 신뢰 원동력
백남곤 대표가 뽑는 성공비결은 뭘까. 그는 '상도덕을 잘 지킨 게 성공열쇠'라고 말했다.
"제 단골손님이 매우 많았지만, 단 한 명도 빼오지 않았습니다. 남의 단골고객을 빼앗아 오기 위해 말도 안 되는 가격에 물건을 주고 고객에게 다른 가게를 헐뜯는 상인들도 많습니다. 저는 정정당당하게 승부하고 싶었습니다. 저한테 물건을 공급받고 싶다고 오는 다른 가게 손님들을 돌려보냈습니다. 제게 수산물을 공급받는 게 어렵다고 소문나면서 오히려 더 저를 찾는 고객들이 많아졌습니다. 사람 심리가 참 우습지요. 저를 싫어했던 상인들도 제 진심을 알게 되면서 미움을 풀더군요. 상도를 잘 지켜온 것이 저의 첫 번째 성공비결인 것 같습니다."
백 대표에 의하면 새로운 소매상을 잡기 위해 이들에게 뒷돈을 주는 도매업자들도 많다. 백 대표는 단 한 번도 뒷돈을 주고 물건을 거래한 적이 없다. 뒷돈을 주면 결국 수산물 가격이 올라가고, 이는 다시 고객에게 피해를 입힌다고 판단해서다. 수산물을 팔지 못하더라도 고객에게 수산물 상태를 정확하게 설명한 점도 고객 신뢰를 받는 데 중대한 역할을 했다.
"국내에 들어오는 생태는 100% 일본산입니다. 일본에서 잡은 생태가 가락시장까지 오는 데 최소 일주일 소요됩니다. 생태를 일주일 동안 살아 있는 상태로 보관하려면 방부제가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고객들이 생태 겉모습만 보고 상태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저희는 생태 등 모든 수산물을 고객에게 판매할 때 가락시장에 온지 며칠 됐는지 알려줍니다. 마진율도 최소로 해서 최대한 저렴한 가격에 판매합니다."
백남곤 대표는 맨손에서 시작해 이미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만, 다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가락시장 대부분의 상인들은 물건을 판매한 뒤 나중에 손이나 엑셀 등을 이용해 판매내역을 기록하며 관리한다. 그는 이 번거로움을 없애기 위해 한두 번 손가락 터치만으로 간편하게 물건 판매와 동시에 관련 내역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다. 궁극적으로는 이 프로그램을 상인들에게 판매할 계획이다.
백 대표는 사회공헌에도 앞장서고 있다. 최근에도 국내 의료진들과 함께 아프리카에 가서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고 왔다.
"가난할 때는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앞만 보며 달려왔는데, 몇 년 전 봉사활동을 시작하면서 삶의 목
[신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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