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김영란법(청탁금지법) 시행후 첫 스승의 날이었던 15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평일인데도 인근 학교에서 몰려든 2만여 학생들로 때아닌 북새통을 이뤘다.
서울시내 초·중·고 각급 학교에서 정상수업 대신 교내 사생대회·백일장을 줄줄이 개최했기 때문이다. 올림픽공원 관계자는 "어림잡아 2만명 정도 온 것으로 추산되는 데 평일에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몰린건 거의 처음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올림픽공원에서 교내 사생대회를 연 송파구 잠실중학교도 이런 학교 중 하나다. 예년 같으면 카네이션과 선물상자를 들고 교실마다 교사와 학생들이 떠들썩한 이벤트를 벌였겠지만, 이날 학생들은 사생대회 장에서 깨알같은 글씨로 선생님들에게 감사의 손편지를 쓰는 것으로 대신했다.
신천중,숭례중 등 다수의 인근 학교 학생들도 이날 올림픽공원에 대거 몰렸다. 학생이나 학부형이 교사들에게 주는 선물이 사실상 전면 금지된 상황에서 등교 대신 스승과 제자가 만날수 있는 대안을 택한 것이다.
앞서 김영란법 시행과 함께 국민권익위원회는 교사에 대해서 성적평가나 수행평가 등 직무수행 기간과 무관하게 음식물·선물 제공 등을 원천적으로 금지했다. 평소에 제공받는 식사나 선물이 학생 평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논리에서다. 권익위의 해석대로라면 그간 스승의날에 학생들이 개별적으로 선생님 가슴에 손수 달아주었던 카네이션도 불법이 된다. 단 학생 대표 등이 전체 학생들을 대표해 공개적인 장소에서 카네이션을 전달하는 것은 위법이 아니라는 게 권익위 해석이다.
이날 숭례중학교 학생들은 스승의 날에 논란이 많은 카네이션 대신 선생님께 직접 만든 종이 상장을 전달했다. 학생들에게 '열정상'을 받았다는 이수정 선생님(28)은 "생각지도 못한 상을 받아 감동했다"며 "선생님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과 애정이 느껴져 의미가 더 큰 것 같다"고 소회를 밝혔다.
하지만 이날 매일경제 취재진이 돌아본 서울시내 주요 초등학교들은 아예 문제 발생 소지의 '싹'을 자르기 위해 상당수가 자진 휴교쪽을 택했다. 서울 신내동 소재 금성초 이수련 교감은 "스승의 날 휴교에 앞서 지난주에 각 학급별로 스승의 날 노래 지도와 선생님께 감사편지 쓰기 행사를 미리 진행했다"고 말했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예년에도 '스승의 날'엔 서울시내 학교들 가운데 상당수가 자체판단으로 휴교하기는 했지만 올해는 숫자가 훨씬 더 늘어난 것 같다"며 "이런 저런 불법이라는 것 투성이인데 굳이 구설에 오를 필요가 있겠느냐는 게 학교측 분위기"라고 말했다.
학교 현장에서는 김영란법시행 이후 문제 소지가 없도록 민첩한 대응을 보였지만 혼란은 여전하다. '종이로 만든 꽃으로 꾸민 카드는 가능하나' '감사 플래카드는 걸 수 있나' '구청 실업팀 감독인 검도장 사범님께는 선물해도 되나' '작년 담임 선생님께 작은 선물을 하는 것은 괜찮나' 등 수백개 질문이 권익위 게시판으로 쏟아졌다.
하지만 권익위는 스승의날과 관련된 어떤 세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고 대부분 문의사항에 대해 "개별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식의 답변만 내놨다. 초등학교 4학년생 아들을 둔 윤 모씨(40·여)는 "아들이 반장인데 권익위가 꽃을 줘도 괜찮다고 한 '학생대표'가 전교 회장만 해당되는지 반장도 해당되는지, 또 꽃값도 모두 공평하게 거둬야 한다는 건지 알쏭달쏭하다"며 "정답 없는 시험지를 주고 틀리면 매는 드는 것과 뭐가 다르냐"고 꼬집었다
학생대표가 교사들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는 행사를 한 종로구 C중학교 교감은 "선생님들이 전혀 기대하지 않고 출근했다가 깜짝 이벤트에 흐뭇해했다"며 "개인적으론 선생님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는 것까지 규제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것 같다"고 말했다.
[박재영 기자 / 양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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