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66·불구속기소)은 2일 피고인신문에서 본인이 그룹의 최고 의사결정권자였다는 취지의 주장을 수차례 반복했다. 이는 삼성이 최순실씨(61·구속기소)를 지원한 과정에서 이재용 부회장(49·구속기소)은 배제됐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를 근본적으로 부인하는 근거 또는 토대가 된다.
전날 장충기 전 미전실 사장(63·불구속기소)이 피고인신문에서 "이 부회장에게 승마지원 건을 보고하지 않았다"고 진술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다만 피고인신문에서 거짓을 말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향후 재판부가 이들의 진술을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공판 막바지 최대 쟁점이 됐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 심리로 진행된 공판에서 최 전 실장은 '이 부회장이 그룹 총수는 아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그는 "밖에서는 이 부회장이 후계자이고 이건희 회장(75)이 와병중이라 의전상 자주 회사 대표로 나가니 좋은 뜻에서 총수라고 해 오해한 것 같다"며 "이는 조직 운영체계나 회사 풍토·관행을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밝혔다.
또 그는 "이 회장은 2014년 5월 쓰러지기 전부터 거의 전권을 저에게 위임했다"며 "제 재직 기간 동안 그룹 차원에서 최종 의사결정은 제 책임 하에 내렸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 회장은 2014년 두 번, 2013년 열두 번 정도 출근했다"며 "출근해서도 오전에 차 마시고 오찬하고 퇴근했기 때문에 거의 전부를 저에게 맡겼다"고 덧붙였다.
삼성 사장단 인사에도 이 부회장이 관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인사는 발표 전 이 부회장에게 보고하는 것인가"라고 묻자, 그는 "후계자에게 예의상 사전에 알려주고 의견을 듣기 위해 인사팀에게 보고하라고 지시는 했지만 결정은 제가 했다"고 답변했다. 그동안 삼성 측 변호인단이 이 부회장은 미전실 소속이 아니라 보고를 받거나 지시를 하는 구조가 아니라고 주장한 것과 같은 취지다.
최 전 실장은 이 부회장이 전문적인 실무 분야는 잘 모른다는 점도 함께 부각시켰다. 특검은 2015년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이 부회장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관계자들을 만나 합병이 성사돼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연금 측에서 면담 후 작성한 보고서를 근거로 이 자리에서 이 부회장이 합병비율 조정이 어렵다는 의견을 밝히고 '플랜B는 없다'는 말을 했다는 게 특검 측 주장이다. 하지만 최 전 실장은 "이 부회장은 자본시장법 등에 대해 잘 모른다"며 "평소 이 부회장의 업무 지식이나 관심 범위를 봤을 때 당시 저나 김종중 전 미래전략실 전략팀장(61)이 거의 답변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최 전 실장은 "최 씨 지원 등에 대해 이 부회장에게 이야기 하고 (이 부회장이) 스톱해줬다면 이런 일(국정농단 사태에 삼성이 관여된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후회한다"고 밝혔다. 이는 정관주 전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64)이 조윤선 전 정무수석(51)에게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보고했다면 관련 사업이 중단됐을 것이라고 증언했던 구조와 비슷하다. 조 전 수석이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 받은 근거 중 하나가 정 전 비서관의 증언이었다.
이처럼 최 전 실장의 진술은 구체적인 사안을 보고받지 않고, 최종 의사결정권자도 아닌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 목적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65·구속기소)이나 최 씨 등에게 부정한 청탁을 하고 대가로 뇌물을 제공했을 리 없다는 점을 강조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이 때문에 특검도 최 전 실장 답변의 허점을 파고드는데 주력했다. 최 전 실장은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4년 4월 처음
[채종원 기자 / 정주원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