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북한을 폭격한다? 그럼 전쟁인가? 북한이 핵이나 생화학 무기 또는 장사정포로 수도권 주요 시설을 타격하는 실전 상황이 되면 어떻게 해야할까?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지만, 만일을 위한 대비는 철저할수록 좋다는 생각에 매일경제신문은 피난을 갈 경우 어떤 물품을 챙겨야 하는지, 정부에서 권장하는 전시 상황별 대처 요령은 무엇인지 등 행동 요령을 체크했다. 체력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낀 '피난길 체험'은 덤이다.
먼저 경보의 종류별 대처 요령부터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음의 높낮이가 없는 평탄음으로 1분 동안 사이렌이 울리면 적 공격이 예상된다는 경계경보가 발령된 것이다. 대피소로 대피를 준비해야 한다. 공습경보가 울리는 경우에는 5초 상승하고 3초 하강하는 파상음이 3분 동안 울린다. 이때는 방독면과 식량을 챙기고 재빨리 지하 대피소로 이동한다. 적의 화생방공격이 있거나 예상될 때는 정부가 라디오와 TV, 확성기 등으로 직접 알린다. 방독면이 없으면 비닐이나 우의로라도 몸을 감싸야 한다.
북한이 장사정포를 동원해 포격을 가한다면 북한과 접하고 있는 '접적(接敵)지역'인 인천 옹진군, 파주, 철원 등 32개 시·군 주민은 정부 주도로 대피를 진행한다.
그러나 “이들 지역 외 나머지 지역에서는 피난을 가지 않는 게 안전하다”는 게 정부 당국의 설명이다.
특히 차를 몰고 어딘가로 떠나겠다는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대학 연구기관에 근무하는 한 전문가는 “전쟁이 발발하면 군 장비의 이동을 위해 모든 간선도로가 통제된다”면서 “차를 몰고 나오면 걷는 것만도 못할 정도로 극심한 정체 때문에 동네에 있는 대피소로 뛰어가는 게 최선”이라고 단언했다.
다른 관계자에 따르면 전쟁 발발과 동시에 내년부터는 네비게이션이 모든 길을 간선도로가 아닌 우회 지선도로로 안내하도록 하는 시스템이 모든 길을 우회 지선도로로 안내하는 시스템이 작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개인적으로 짐을 싸서 도보로 피난을 간다면 이를 말리진 않는다”면서 “그러나 대피시설에서 정부의 후속 조치를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피난을 갈 경우 무엇을 챙겨가야 할까? 정부 공식 메뉴얼에 따르면 평상시 가정에 식량과 라디오 방독면 등 비상대비 물자를 구비해둬야 한다. 굳이 가방을 싸서 피난을 가려면 메뉴얼에 나오는 물자 목록을 참고해 준비하면 된다. 매뉴얼에 따르면 방독면과 우의는 물론이고 창문 등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오염 물질을 막을 수 있는 다량의 접착테이프도 준비해 둬야 한다.
매일경제 기자는 이 같은 매뉴얼을 참고해 직접 피난체험을 했다. 지난달 말, 무더위를 뚫고 전쟁이 날 경우에 대비해 피난길을 걸었다. 참고한 길은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이른바 '청광코스'. 청계산에서 광교산에 이르는 길이다. 서울을 벗어나 경기도로 넘어가는 루트다. 기자는 청계산 초입에서 옥녀봉·매바위·매봉까지 걷고 하산했다.
행안부의 평시 대비물자대로 짐을 꾸려보니 약 30kg의 무게가 어깨에 얹혔다. 직접 짐을 챙겨보니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의 라디오와 나침반은 웬만한 마트에서도 판매하지 않기 때문에 미리 구해놓지 않으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휴대폰은 통신장애 상황에서 그냥 ‘벽돌'이 될 수 있는만큼 나침반과 라디오는 필수다.
실제 상황에 맞추기 위해 집에서 출발해 도심을 지나기로 했다. 서울 아현 지하철역에서 마포대교를 건너 여의도와 양재동을 거치는 코스였다. 30kg은 가볍지 않았다. 여기에 화생방 상황을 염두에 두고 도심 한가운데서 방독면도 써봤다. 5분이 지나자 생화학 가스가 아니라 방독면 자체의 답답함에 숨이 막혀 죽을 확률이 높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다시 방독면을 벗고 서너시간을 걷자 나온 산길. 그야말로 '생지옥'이었다. 양재동 양곡도매센터(청계산입구)에서 옥녀봉을 거쳐 매봉으로 가는 진짜 피난체험을 위한 코스였다. 30kg의 피난 등짐이 기자를 짓눌렀다. 한 명 분이 이렇게 무거운데, 가족을 동반하면 육상대피는 어림도 없겠다는 걱정이 앞섰다.
이날 등산로 초입에서 기자의 피난 체험을 유심히 지켜보던 등산객 박성수 씨(76)는 "6·25 당시 피난길에 올랐는데 짐이 이것보다는 훨씬 많았다"며 "전쟁을 직접 경험한 세대로서 우리 국민들이 너무 평화에만 젖어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피난길에 만난 등산객들은 "진짜 전쟁이 터지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막막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매봉 정상에서 만난 등산객 이 모씨(28·여)는 "일주일에 두 번씩은 오는 코스인데 이곳이 피난길로 이용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며 "전쟁에 대한 무서움은 있는데 정작 어떻게 짐을 꾸리고 어떻게 이동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날 피난 짐을 짊어지고 이동한 산길만 약 7km. 양재동 화물터미널을 거쳐 옥녀봉, 매바위, 매봉을 찍고 내려오는 하산 길까지 6시간 남짓의 시간이 걸렸다. 체력이 약한 사람은 무조건 대피소부터 찾아야 한다.
[최희석 기자 / 유준호 기자 / 임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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