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가 흐르는 송편과 잡채, 각양각색의 전(煎)과 나물에 갈비찜까지 예로부터 추석 차례상은 가짓수도 다양하고 양도 푸짐하게 올려야 미덕이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경기 불황과 핵가족화의 영향으로 차례상에도 '다이어트'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예법에 얽매이기보다는 차례 음식 간소화로 비용과 시간을 모두 아끼는 '실속파'가 일반화될 날이 머지않아 보입니다. 특히 유교문화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진 홍동백서(붉은색 음식은 동쪽에, 흰색 음식은 서쪽에 놓는 것)나 조율이시(대추-밤-배-감 순서로 차리는 것), 어동육서(생선은 동족, 고기는 서쪽으로 놓는 것)라는 용어들이 정작 유교적 근거가 없는 '예법'으로 알려지면서 차례상 간소화 움직임이 점차 확산하고 있습니다.
유교 예법의 기준으로 꼽히는 중국 송나라 주자가 쓴 '주자가례'나 조선 후기 예법을 정리한 '사례편람', 율곡의 '격몽요결' 어디에도 이런 제사상 차림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옛 성현들은 오히려 '집안 사정에 따라 정성을 다하면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격식을 따지다보면 음식의 구색을 맞추려고 욕심을 내게 되는데 이런 외형적 틀에서 벗어나 각자 형편에 맞게 상을 차려야 명절 스트레스 없이 온가족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게 실속파들의 논리입니다.
청주에 사는 주부 최모(44)씨는 이번 추석 차례상에 올릴 음식 중 전 종류와 송편은 전통시장이나 대형마트에서 파는 완제품을 사다 쓰기로 했습니다.
차례상에 빼놓을 수 없는 전은 동태, 소고기, 채소 등 많은 식재료를 준비해야 하므로 비용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추석 연휴 일주일 전 발표한 전 올해 차례상 예상 구매비용(4인 가족 기준)은 전통시장 21만8천889원, 대형마트 30만3천596원입니다.
그러나 묶음 단위로 식재료를 사다 보면 이런 기관 발표액보다 실제 비용이 훨씬 많이 든다는 게 최씨의 하소연입니다.
여기에 반죽하고 일일이 튀겨야 하는 등 번거로움을 생각하면, 짧은 시간에 간편하게 데우기만 하면 되는 완제품은 여러모로 이점이 많습니다.
최씨는 "명절 때마다 차례 음식이 남아 결국 버려야 할 때가 되면 돈 들여가며 헛고생만 했다는 생각에 씁쓸하다"며 "올해는 형식보다는 실속을 챙기자고 시부모와 남편을 설득했다"고 말했습니다.
어머니와 부인, 초등생 자녀 1명을 둔 직장인 이모(40)씨는 아예 주문형 차례상을 맞췄습니다.
주문형 차례상은 전문업체가 차례 음식을 모두 만들어 배송해주는 것으로 다양한 음식을 기호에 맞게 고를 수 있습니다.
주문자는 배달된 음식을 데워 차례상에 올리기만 하면 됩니다. 음식을 직접 준비하는 것보다 비용면에서도 저렴합니다.
이씨는 "네 식구 밖에 안되는 데 음식 준비하느라 고생하기보다는 그 시간을 아껴 휴식을 취하거나 여행을 다녀오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지난 설에 처음 이용해 봤는데 과일류만 따로 준비하면 되고 너무 편하더라"고 말했습니다.
이씨와 같은 실속 위주의 소비자가 늘다 보니 오프라인은 물론 모바일에서도 주문형 차례상 공급업체가 생겨날 정도로 관련 시장이 매년 2배 이상 커지고 있다는 게 유통업계의 전언입니다.
이런 명절 트렌드의 변화는 관련 조사에서 그대로 나타납니다.
30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이달 초 소비자가구(주부) 패널 59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추석에 차례상을 차린다는 응답자가 71.2%였고, 이 중 35%는 간편하게 구색만 맞추겠다고 답했습니다.
이는 전년 추석(29.8%)보다 5.2%포인트가 증가한 수치입니다.
전통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가족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중심으로 차례상을 차리겠다는 응답률도 지난해 12.4%에서 19.3%로 증가했습니다.
차례상을 차리겠다는 소비자의 54.3%는 차례상을 간소화
유양석 국민대 교양대학 교수는 "추수의 감사함을 조상들에게 올리고, 온 가족이 모여 즐거움을 나눈다는 차례상의 유래를 생각하면 어떤 것을 올리는가보다는 함께 모여서 조상을 생각하는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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