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엔 인문·사회계열 전공자도 AI를 알아야 합니다"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서울대가 전공 간 벽을 허물고 빅데이터.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분야를 함께 가르치는 이색 교과목을 개설해 눈길을 끈다.
9일 서울대에 따르면 서울대 공대는 최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요구되는 융합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사물인터넷(IoT)·인공지능(AI)·빅데이터 개론과 실습'(이하 IAB) 교과목을 개발, 올해 2학기부터 비전공 학부생을 대상으로 개설할 예정이다. 학문분야 간 장벽을 허물어버린 이 같은 시도는 국내에서 서울대가 처음이다.
서울대가 나선 것은 4차 산업혁명의 성패가 다양한 학문분야의 융복합에 달렸다는 인식에서다. 교과목 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차국헌 공대 학장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기술의 융복합에 있다. 4차 산업혁명 최전선에 있는 대학들이 기존의 전공 간 벽을 허물고 융합형 인재 양성에 나서야 한다"며 "(IAB 교과목은)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을 우리나라의 모든 분야에 정착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전공분야를 가릴 것 없이 첨단기술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며 "공대생 뿐 아니라 인문·사회 계열 학생들도 IAB 과목을 수강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대학이 주도적으로 나서 AI, 빅데이터, IoT 등 첨단 과학기술에 대한 비전공자들의 심리적 장벽을 낮추고 이를 통해 다른 분야와의 융합연구를 활성화하겠다는 얘기다. 앞서 올해 초 서울대가 첨단 공학 연구 분야를 초등학생들도 이해하는 쉬운 우리말 단어로 설명하는 '이지 워드(Easy Word)'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한 것도 이 같은 노력의 일환이다.
그동안 서울대 안팎에서는 통합·융합 연구가 전무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현재 서울대 공대는 산하에 14곳의 연구소를 두고 있지만 각각 특정 교수나 학부·학과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다는 것이다. 한 공대 교수는 "자율주행차 연구를 위해선 기계·전기·컴퓨터·재료공학 등 다양한 학문의 융합이 필요하지만 학내 자동차연구소만 해도 특정 학부·학과가 독점적으로 운영해오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해외 대학에서는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기 위해 기존 대학의 틀을 허무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우리나라도 새로운 형태의 교육으로 인재 양성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강현구 서울대 공학교육혁신센터장은 "4차 산업혁명 강국인 미국에서는 대학생들에게 컴퓨터가 갖는 의미가 우리나라 대학생들에게 영어가 차지하는 위상과 같다"며 "미국은 대학 차원에서 학생들이 여차 하면 컴퓨터공학을 전공할 수 있도록 장려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같은 시간에 토익 시험에 골몰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올해 2학기 개설을 목표로 개발 중인 IAB 과목은 공대에서도 전기정보나 컴퓨터공학 전공자가 아닌 3학년 학생들이 주로 수강할 예정이지만 인문대 사회대 등 전체 학생들에게도 열려 있다. 3학점이 주어지는 이 수업은 IoT, AI, 빅데이터 등 각 분야에서 명성이 높은 공대 교수 8명이 함께 참여하는 방식(co-teaching·코티칭)으로 진행된다. 국내 AI 분야에서 손꼽히는 권위자인 윤성로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가 기계학습과 딥러닝을 가르치며, 컴퓨터공학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 중 하나인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소 학술상을 한국인 최초로 수상한 전병곤 컴퓨터공학부 교수가 빅데이터를 다룬다. 기존 교육방식과 달리 학생들이 먼저 강의 동영상을 시청한 뒤 수업 시간에 토론과 과제를 수행하는 플립러닝(Flipped Learning·거꾸로 수업)을 도입할 계획이다.
IAB 수업에서는 효율적인 과제와 실습 진행을 위해 고성능 컴퓨터가 필요하다. 이에 서울대는 최근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탑재한 컴퓨터 서버 60대를 학내에 구축했다. 지난 1일에는 한송엽 서울대 명예교수(전기정보공학부)가 사비로 20대의 컴퓨터를 구매해 공대에
서울대는 현재 이 대학 공학전문대학원에서 AI 트랙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들도 IAB 과목을 전원 수강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서울대 공대 관계자는 "이 과목을 시작으로 블록체인 및 사이버 보안 등 후속 교과목 개발에도 착수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양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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