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권 남용의혹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이 지난달 25일 발표한 조사 결과에 대한 처리 방향을 놓고 사법부 내부 대립과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이번 내분사태는 특조단이 고발은 어렵고 징계 절차를 밟겠다고 밝힌데 대해 김명수 대법원장(59·사법연수원 15기)이 고발 가능성을 검토하겠다고 밝히며 입장을 바꾼 뒤부터 예견돼 왔다. 이번 사태를 어떻게 봉합하는지가 김 대법원장 리더십의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4일 서울중앙지법(원장 민중기)은 부장판사회의·단독판사회의·배석판사회의를 잇달아 개최했다. 전국 최대 규모인 서울중앙지법에 소속된 부장판사는 주로 연수원 24기~28기이다. 배석 또는 단독사건을 맡고 있는 평판사들은 대부분 30기 이후들로 구성돼 있다.
이날 오전 열린 단독판사회의에는 총83명의 소속 단독판사 중 50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로 재판 독립과 법관 독립에 대한 국민 신뢰가 심각하게 훼손됐다"며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 대한 성역 없는 철저한 수사를 통한 진상규명을 촉구한다"고 결의했다. 이어 "김 대법원장은 향후 수사와 그 결과에 따라 개시될 수 있는 재판에 관해 엄정한 중립을 유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부장판사회의는 '조사보고서를 둘러싼 법원 안팎의 의혹해소를 위한 방안 등'을 주제로 오전 11시40분부터 열렸지만 논의가 길어지면서 오후에 다시 회의를 열었다. 배석판사회의도 '조사결과와 관련한 우리의 입장'을 의제로 오후 4시부터 회의를 진행했다.
서울가정법원(원장 성백현)의 단독·배석 판사들도 회의를 열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해 성역 없는 엄정한 수사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가정법원 전체 단독·배석 판사 28명 중 20명이 참석한 이날 회의에서는 수사 촉구 외에 "법원행정처는 특조단의 조사결과 드러난 미공개파일 원문 전문을 공개하라"는 주장도 결의문에 포함됐다. 가정법원 단독·배석 판사들도 연수원 35기 전후의 법관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또 인천지법(원장 김인욱) 단독판사들도 회의를 열고 "특조단 조사 결과로 드러난 모든 의혹에 대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수사 의뢰 등 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날 회의에는 인천지법 소속 단독판사 42명 가운데 29명이 참석했다.
하지만 고등법원 부장판사 등 고위 법관들을 중심으로 이번 의혹을 검찰에 맡겨 해결하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서울고법(법원장 최완주) 소속 부장판사들은 이날 이번 논란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입장을 수렴할지에 대해서 의견을 취합했다. 서울고법 소속 고등부장들의 간사를 맡고 있는 박영재 부장판사(49·22기)가 지난 1일 회의 개최 여부 및 방식 등을 묻는 내용의 이메일을 각 부장판사들에게 보냈다.
향후 서울고법 부장판사들의 회의가 열릴 경우 이들의 판단이 주목된다. 이들 중 상당수는 각급 법원장을 역임하다가 재판에 복귀한 경우도 많다. 한 고법 부장판사는 "대다수 고등부장들은 여론과는 별개로 과연 이번 사태가 형사처벌로 이어질 수 있는 정도의 사안이고 법리 적용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도 면밀히 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또 서울고법 소속 고법판사 회의도 이날 오후 열렸다. 이들 고법판사는 지법 부장판사급 법관들이다. 한 고법판사는 "전직 대법원장 시절 문제가 있었다는데 공감대는 있지만 검찰에 맡겨 사태를 해결해야 하는지에는 의문을 갖는 법관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대법원은 이날 일부 대법관들이 김 대법원장의 고발 시사 발언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고 일부 언론에서 보도한데 대해 "김 대법원장은 지난 1일 일부 대법관들과 차담회를 듣고 이야기를 경청했다"고 밝혔다. 일부 대법관들이 이번 파문이 불필요한 오해를 낳거나 사법 불신을 오히려 부추길 우려가 있다는 걱정을 표시한 것 뿐이라는 취지다. 일각에서 이번 사안을 두고 일부 대법관들과 갈등과 대립을 하고 있다는 관측에 선을 그은 것이다. 김 대법원장도 출근길에 취재진을 만나 일부 대법관들과 입장이 엇갈린다는 일부 언론보도에 대해 "의견차이라고는 저는 생각하지 않고 저는 그날 걱정들을 하시는 것을 주로 듣는 입장을 취했다. 의견 차
또 각 법원별로 진행되고 있는 각급 판사회의에 대해 김 대법원장은 "지금의 일을 제대로 해결할 수 있는 현명한 의견들이 많이 제시됐으면 좋겠다. 가감 없이 그에 관해 들은 다음에 제 입장을 정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채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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