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 서울 덕수궁 석조전 안내판 /사진=석조전 안내판 그래픽 |
서울 덕수궁 석조전 앞에 설치된 안내판입니다. 안내판을 읽고 석조전이 어떤 건물인지 상상이 가시나요? 한국에서 태어나 정규교육을 마친 저! 솔직히 어떤 건물인지 머릿속으로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나만의 문제인걸까? 서울 명동에서 만난 시민들께 위 안내판을 보여드렸습니다. (독자분들도 한번 모르는 단어가 있는지 한번 체크해보세요!)
◆ 평균 4.1개 단어 어렵다고 느껴…"전문용어 많아 난해"
서울 명동에서 만난 13명의 시민들 중 안내판에 적혀 있는 모든 단어의 뜻을 알고 있는 시민은 단 한 분도 없었습니다.
↑ 지난 4일, 시민 13명에게 덕수궁 석조전 안내판을 보여주고 모르는 단어를 빨간색 펜으로 줄쳐줄 것을 요청한 결과, 평균 4.1개의 단어를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문화재 안내판 이해 분석 결과 |
시민들이 안내판을 읽고 어렵다고 답한 단어는 평균 4.1개. 안내판의 주어나 목적어, 부사어 중 명사만을 기준으로 단어가 15개인 것을 고려하면 4분의 1가량을 이해하지 못하는 셈입니다.
응답자 대부분은 "전문용어가 많아 내용이 난해하게 느껴진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시민들은 가장 어려운 단어로 '코린트식 기둥'을 꼽았고, '이오니아식 기둥', '박공지붕', '의석조' 등과 같은 단어도 '어려운 단어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 시민 13명이 모른다고 대답한 단어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분석했다 /사진=문화재 안내판 이해 분석 결과 |
단어 하나하나는 몰라도,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면 되는 것이 아니냐라고 반문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이에 시민 13분께 사진 4개를 보여드리고, 어떤 것이 덕수궁 석조전인지 여쭤봤습니다.
↑ 덕수궁 석조전 안내판을 본 뒤 '중명전, 석조전, 정부청사, 한국은행' 건물 중 석조전 건물을 골라볼 것을 요청했다/사진=문화재청 |
시민들은 아리송한 단어들을 조합해 그럴듯한 추측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서양식 건물인 건 알겠는데..." "분수정원이 있다니까..."
44살 박찬호 씨는 고민 끝에 "이건가?"라며 어딘가를 힘차게 가리켰습니다. 그의 손가락 끝이 정답으로 향했다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땡! 찬호 씨의 손가락은 석조전이 아닌 다른 건물을 짚었습니다. (답은 2번입니다)
박 씨를 포함하여 응답자의 13명 중 9명이 석조전을 찾아내는 데 실패했습니다. (틀리셨다고 해도 절망하지 마세요!)
석조전 안내판은 건물 외관에 대한 설명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하지만 시민들은 석조전의 역사적인 가치에 대해 더 궁금하다고 말합니다.
만약 이렇게 쓰여져 있었다면 여러분, 어땠을까요? 석조전이 더 친근하게 다가왔을까요?
↑ 덕수궁 석조전 설명/사진=석조전 설명 그래픽 |
↑ 덕수궁 석조전 구성/사진=석조전 구성 그래픽 |
◆ 덕수궁 석조전 안내판, 비교적 최근인 '2007년 재정비' 됐지만...
서울 덕수궁은 우리나라 사람들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곳입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15년부터 2017년까지 내외국인 79만 1,729명이 덕수궁을 다녀갔습니다.
서울 덕수궁 석조전은 문화재청이 비교적 신경을 쓴 곳입니다. 2007년 안내판을 수정해 재정비했고, 2015년 4개 국어로 확대 번역했죠.
↑ 청와대 내 침류각 안내판/사진=청와대 |
문재인 대통령도 문화재 안내판이 필요 이상으로 어렵게 쓰여져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월 29일 청와대 내에 있는 '침류각' 안내판을 예로 들면서 "오량가교, 일반 국민에게 무슨 관심이 있냐. 제가 느끼는 궁금증은 '이게 무슨 용도로 만들어졌을까, 언제, 왜 이게 지금 청와대 안에 있는지' 등이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청와대 침류각은 '관광지'가 아니기 때문에 비교적 덜, 신경을 써 어려운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는 게 아닐까하고 생각했습니다만, 80만 명이 찾아간 서울 고궁의 안내판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손이 많이 닿지 않은 지방의 유적지 안내판은 어떨까요?
"석조전을 이해하는데 코린트식 기둥을 알아야
문화재청은 지난 27일, 문화재 안내판을 이해하기 쉽고 흥미로운 내용이 담긴 안내문안으로 바꾼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전문적인 건축지식이 없어도 유적지를 둘러보며 우리 조상들의 삶을 즐겁게 상상해볼 수 있는 날이 오겠죠?
[MBN 온라인뉴스팀 유찬희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