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에서 심각한 수준의 여성혐오 표현이 난무하는 가운데 이를 지적하는 여학생들에게 집단적인 언어적·신체적 폭력이 가해지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피해 학생들은 교사·학교 측이 가해 학생을 계도하지 않는 탓에 교실 현장이 혐오표현으로 뒤덮이고 있다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피해 사실을 폭로하며 기록에 나섰습니다.
광주광역시에 사는 중학교 3학년 이윤(16·가명) 양은 8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학교에 '보이루를 쓰지 말자'는 내용의 대자보를 붙였다가 남학생들로부터 수차례 폭언·폭행을 당했다"고 말했습니다.
'보이루'는 유튜브 구독자 수가 230만명에 달하는 유명 BJ '보겸'이 자신의 이름과 '하이루'를 합성해 만든 인사말입니다. 보겸의 인기에 힘입어 '보이루'는 현재 초중고 학생들이 매일 습관적으로 쓰는 신조어 인사말이 됐습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보겸이 데이트 폭력을 저질렀던 사실이 확인된 점, 보겸의 의도와 달리 '보이루'에 여성 성기를 지칭하는 비속어를 섞어 쓰는 남학생이 많은 점 등을 지적하며 이 유행어 사용을 지양하자는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평소 청소년 인권운동 및 페미니스트 활동을 하는 이윤 양은 지난 5월 말 학교에 대자보를 붙이면서 "'보이루'는 뜻이 변질돼 여성혐오 표현이 됐다. 혐오표현을 학교에서 듣고 싶지 않다"고 적었습니다.
이 양이 붙인 대자보는 남학생들에 의해 곧바로 떼어졌습니다. 남학생 8명은 이 양을 원 형태로 둘러싸고 1분가량 "보이루! 보이루!"라고 반복해 외친 다음 크게 웃으며 도망갔고, 다른 남학생들도 이 양에게 "미친X" 등 험한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지난달 13일에는 물리적 폭력도 있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교실로 돌아가던 이 양에게 모르는 남학생이 갑자기 다가와 "보이루 메갈X"이라고 말하더니 등을 발로 세게 걷어찼습니다.
이 양이 당한 폭력에 교사들은 남학생들에게 단순히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는 수준의 주의만 줬습니다. 이 양은 가해 학생이 처벌받기를 원하지만, 학년부장인 담임교사는 '해당 사건은 학교폭력대책 자치위원회(학폭위)에 회부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이 양은 인터뷰에서 "청소년 페미니스트는 이 같은 폭력을 당해도 개인의 힘으로 사건을 해결할 수가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청소년에게 사건이 벌어지면 친권자에게 연락이 가는데, 친권자가 인권운동에 부정적이면 사건이 해결되지 않는 것은 물론 가정폭력까지 받을 수 있다"면서 "생활기록부에 불이익을 받으면 성인이 돼서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청소년 페미니스트는 폭력을 당해도 교육청이나 경찰에 신고할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최근 트위터에서는 이 양처럼 학교에서 폭력을 당한 청소년 페미니스트들이 '#청소년페미가_겪는_학교폭력' 해시태그를 단 게시글을 통해 피해 사례를 폭로하며 기록하고 있습니다. 같은 이름의 피해 제보 계정도 생겼습니다.
청소년 페미니스트들이 또래 집단, 특히 남학생들에 대해 가장 심각하게 우려하는 지점은 일상에서의 언어 습관입니다.
한 여학생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여성 성기를 지칭하는 비속어나 'X털', '쌌다' 등 말을 듣습니다. 수업시간에 큰 소리로 신음소리를 내는 아이들도 많다"면서 "화산 그림을 보고 '생리 같다' 하고 수업에 '봉지'라는 단어가 나오면 여성 성기를 얘기하며 웃는다"고 전했습니다.
심각한 여성혐오가 교실에서 난무하는 것을 참지 못한 여학생이 정중히 자제를 요청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면, '남자들끼리의 농담'으로 가볍게 여겨지던 혐오는 해당 여학생 한 명을 향한 '사냥'으로 돌변합니다.
한 고등학생은 "학기 초에 반 단체카톡에 '보이루' 인사가 많길래 불편한 사람도 있으니 조금은 자제해달라고 했더니, 남학생들로부터 '차에 치여야 한다, 산에 묻어야 한다' 등 위협을 받았다"면서 "의자에 압정이 쏟아져 있거나 빨간색으로 '죽어', '보X년' 등을 적은 종이가 가방에 잔뜩 들어있기도 했다"고 털어놨습니다.
'#청소년페미가_겪는_학교폭력' 해시태그가 달린 폭로 게시글은 지난달 29일 해시태그 운동이 시작된 후로 일주일 만에 2천여개에 달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교육 당국이 조속히 페미니즘 교육을 시행해 학생들이 혐오표현을 사용하지 않도록 언어 습관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촉구합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인종차별이 심각한 유럽에서는 그만큼 인종에 관한 욕이 많은데, 학교에서 역사 교육을 하면서 그런 혐오표현이 왜 잘못됐는지 배경부터 가
윤김 교수는 "남학생들의 여성혐오가 심각하다 보니 교사들마저도 불이익을 우려해 페미니즘을 가르치기를 꺼리고 있다"면서 "외부에서 전문 강사를 투입하는 페미니즘 교육을 통해 피해 학생과 교사를 보호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