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 치매 상태에서 아내를 살해한 60대 남성에게 법원이 직권으로 보석을 허가하고 치료를 받게 하기로 했습니다.
치료를 받지 않으면 구치소에서 상태가 더 악화할 게 뻔한 만큼 치료감호나 치매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는 게 처벌보다 급선무라는 판단입니다. 중증 치매 환자에 대한 책임을 국가가 나눠 져야 한다는 생각에서 내린 결정입니다.
오늘(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는 최근 살인 혐의로 기소된 67살 A 씨의 항소심 재판에서 "이 사건을 시범적으로 치료구금 개념으로 진행하고자 한다"고 밝혔습니다.
A 씨는 2013년부터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커피를 한 잔 마시고 돌아선 뒤 다시 커피가 보이면 "나 한 잔만 달라"고 말해 가족을 당황하게 했습니다. 지난해 7월 말 폭우로 집이 침수돼 집이 엉망이 됐을 때도 다음 날 찾아온 딸에게 "이 집이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A 씨는 치매에 이어 망상증세까지 겪었습니다. 딸에게 "엄마가 자꾸 내걸 가져가고, 엄마가 날 어떻게 할 것 같다"며 잘 때도 옷을 벗지 않았습니다.
치매와 망상이 겹친 상황에서 A 씨는 지난해 11월 아들 집에 있던 아내에게 흉기를 휘둘렀습니다.
A 씨는 살인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검찰은 1심 형량이 너무 낮다고 항소했고 A 씨의 가족도 다시 판단을 받아보겠다며 항소했습니다.
A 씨의 범행으로 모친을 잃은 그의 아들은 항소심 재판부에 나와 "형량의 높고 낮음보다 질병이 있는 입장에서 재판을 받는 게 의미가 있느냐는 생각에 항소했다"며 "질병 치료가 우선 선행된 후 죄에 대한 형량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재판부에 낸 탄원서에서도 "이 사건은 단순한 분노의 사건으로 치부돼 판결되는 게 아니고, 사회병으로 불리는 치매가 사회악으로 발전하는 걸 막고 국가와 제도를 통해 치유되는 선례로 남아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고 적었습니다.
A 씨의 딸 역시 법정에서 "피고인은 내용을 모르고 그냥 '예', '아니오'로 대답하고 있다. 지금 재판받을 수 있는 상태가 못 되신다"며 오열했습니다.
그간의 기록과 A 씨 가족의 탄원서 등을 살펴본 재판부는 "우리가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이상 치매와 같은 논의는 피할 수 없어 보인다"며 "이 사건을 시범적으로 치료구금 개념으로 진행하고자 한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의 피고인과 같은 중증 치매 환자는 가족이 돌보는 데 한계가 있고, 국가가 그 책임을 나눠질 필요가 있다"며 "국가 도움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대상은 이 사건과 같은 중증 치매 환자"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중증 치매 환자로 보이는 피고인은 집중 입원 치료를 받지 않으면 수감 생활 동안 치매가 급격히 악화할 것으로 보인다"며 "직권으로 보석을 허가해 치료 진행 경과를 확인한 뒤 그 내용을 최종 판결에 반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주거지는 치매 전문 치료 병원으로 제한한다는 조건입니다.
검찰은 이에 대해 "사안의 중대성이나 본류를 고려하지 않는 건 문제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며 "병원보다는 먼저 치료감호가 가능한지 알아보는 게 우선 절차로 보인다"는
A씨의 아들 역시 범죄를 저지른 부친을 받아 줄 병원을 찾기가 쉽진 않다고 토로했습니다.
재판부는 이런 현실적인 문제 제기를 두고 "검찰과 변호인, 피고인 가족이 서로 협조해서 방안을 찾아보고, 병원에 입원할 경우 국가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열심히 알아봐야 할 것 같다"고 당부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