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6일 오전 7시 30분쯤 경기도 오산시 내삼미동의 야산 묘지에서 벌초하던 한 시민은 익숙지 않은 흰색 물체를 보고선 일손을 멈췄습니다.
종중 묘지가 있어서 자주 찾는 곳인데 몇 달 전에만 해도 보이지 않았던 물체여서 그는 가까이 다가가 살펴봤습니다. 흙 위로 반쯤 모습을 드러낸 것은 사람의 대퇴골(넙다리뼈)이었습니다.
그로부터 두 달여 간 이어진 경찰 수사 끝에 20대 3명이 살인 등 혐의로 붙잡힌 일명 '오산 백골 시신 사건'은 이처럼 시작부터 끝까지 곳곳에 극적인 순간을 품고 있습니다.
백골 시신은 처음 발견 당시 여성의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더욱이 오산은 악명높은 장기미제 사건인 화성연쇄살인사건 발생 장소와 인접한 곳이어서 경찰은 해당 경찰서에 사건을 맡기는 대신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를 투입, 사건 해결의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수사는 처음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며칠 뒤 시신의 주인은 고도의 충치가 있는 15∼17세 남성이라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가 나왔지만, 대퇴골에서 확보한 DNA와 국과수 데이터베이스상 일치하는 인물은 없었습니다.
경찰은 오산, 화성은 물론 수원, 평택 등까지 범위를 넓혀 수도권 일대에 거주하는 가출 또는 장기결석자, 주민등록증 미발급자 등 15개 항목에 걸쳐 3만8천여명을 일단 추렸습니다.
이후 일일이 이들의 신변을 확인하는 지난한 작업이 시작됐습니다.
그렇게 한 달여가 지났을 무렵 주민등록증 미발급자 2천276명을 살펴보던 한 형사의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던 눈이 반짝였습니다.
2천272명에게는 별다른 문제가 없음을 확인한 그는 연락이 닿지 않는 나머지 4명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둘러보다가 A(지난해 사망 당시 17살) 군의 SNS 프로필 사진에서 드문 디자인이지만 자신의 눈에는 아주 익숙한 반지를 보았습니다. 시신 발견 장소에서 유류품으로 함께 나온 검은색 반지였습니다.
경찰은 급히 A 군의 가족 DNA를 확보해 시신에서 나온 것과 대조했고 지난달 25일 둘이 일치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시신 발견 49일 만입니다.
수사는 급물살을 탔습니다. A 군의 최종 행적 조사가 곧바로 이어졌고 A 군이 지난해 6월 미성년자 약취 유인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은 사실이 나타났습니다.
당시 조사에서 A 군은 22살 B 씨와 22살 C 씨의 지시를 받고 이들이 꾸린 '가출팸'(가출+패밀리)에 속한 가출청소년들을 감시했다고 진술했고 이를 파악한 경찰은 B 씨 등이 A 군의 사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B 씨 등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 경찰은 지난해 9월 B 씨가 서울에서 경차를 운전하다가 사고를 낸 뒤 그대로 달아나 뺑소니 혐의로 입건됐던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아울러 B 씨가 사고 이후 이 차량을 찾아가지 않아 서울의 한 견인차량보관소에 그대로 있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거의 폐차상태로 방치돼 있던 문제의 차량에서는 생수통과 마스크, 장갑 등이 나왔지만 결정적인 단서는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트렁크에서 미세한 혈흔이 발견됐고 DNA 검사 결과 A 군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B 씨 등이 증거를 인멸하거나 말을 맞출 것을 우려해 진작 용의선상에 올려두고도 B 씨 등에 대한 직접적인 접촉을 자제하던 경찰은 이처럼 확보한 증거들을 바탕으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B 씨, C 씨와 이들과 함께 A 군을 살해한 다른 동갑내기 1명 등 3명을 살인과 사체은닉 등 혐의로 지난 19일 체포했습니다.
이들은 경찰에서 혐의를 모두 인정했습니다. 경기남부청 광수대를 중심으로 한 44명의 전담수사팀이 오산경찰서 한 쪽에 급조한 사무실에서 두 달여 간의 수사 끝에 자칫 또 다른 미제 사건으로 남을 수도 있었던 범죄의 전모를 밝혀낸 순간입니다.
경찰 조사와 B 씨 등의 자백에 따르면 B 씨 등은 자신들이 꾸린 가출팸에서 함께 생활하던 A 군이 미성년자 약취 유인 혐의와 관련해 자신들이 시킨 일이라고 진술한 것에 앙심을 품고 지난해 9월 8일 오산 내삼미동의 한 공장에서 집단폭행해 살해하고 시신을 인근 야산에 암매장했습니다.
당시 B 씨 등은 A 군의 옷을 벗기고 시신을 묻은 뒤 옷을 차량 트렁크에 뒀다가 불태웠는데 이 과정에
경기남부청 윤세진 광수대장은 "B 씨 등으로부터 압수한 휴대전화에 대한 디지털포렌식 등 보강수사를 거쳐 사건을 검찰에 넘길 것"이라며 "사건이 발생한 지 1년 가까이 지났지만, 잘못을 저지른 피의자들을 찾아 망자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줄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