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불법적으로 청와대에 건너간 국가정보원 자금의 성격을 두고 대법원이 "뇌물죄를 물을 수는 없으나 국고손실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놓았습니다.
그간 엇갈려 온 하급심 판단에 기준을 제시한 것으로, 향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재판 등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대법원은 오늘(28일) 박근혜 전 대통령과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 이재만·안봉근·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의 국정원 특활비 사건 상고심에서 이와 같은 판단을 내놓았습니다.
이 사건에서 주된 쟁점은 청와대에 건네진 국정원 특활비의 범죄 성격을 무엇으로 봐야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검찰은 이 돈의 상납에 대해 뇌물죄나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죄를 물어야 한다며 기소했습니다.
하급심은 대부분 뇌물죄를 물을 수 없다고 봤다. 청와대의 요구에 따라 주기적으로 상납된 돈에 대가성이나 직무관련성 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취지였습니다.
대법원은 뇌물죄가 아니라는 데 대해서는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다만 그 이유로는 '횡령금의 내부적 분배에 해당하는 경우 뇌물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법리를 들었습니다.
박 전 대통령과 국정원장들이 국정원 자금을 횡령하고, 이를 박 전 대통령에게 모두 주기로 공모한 것이라고 이 사건의 성격을 규정한 것입니다.
대법원은 "박 전 대통령이 횡령 범행을 직접 실행하지는 않았으나, 국정원장들에 대해 우월하고 압도적인 지위에서 범행을 지시하고, 이를 따른 국정원장들로부터 특활비를 수수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활비의 성격에 관한 두 번째 쟁점은 국고손실죄를 적용할 수 있느냐였습니다.
특가법상 국고손실죄가 적용되려면 횡령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법적으로 '회계관계직원'에 해당해야 합니다.
박 전 대통령과 전직 국정원장들의 1심은 모두 국정원장이 회계관계직원이라고 보고 국고손실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습니다.
반면 2심은 나란히 국정원장을 회계관계직원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을 바꿨습니다. 이에 따라 혐의 상당 부분에 국고손실이 아닌 횡령 혐의를 적용해 1심보다 형량을 줄였습니다.
반면 전달 과정에 관여한 '문고리 3인방'의 2심은 국정원장들이 회계관계직원에 해당한다고 보고 국고손실죄를 적용했습니다.
이날 대법원은 문고리 3인방의 2심 판단대로 국정원장이 회계관계직원에 해당해 국고손실죄를 물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대법원은 "국정원장들은 특활비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직접 그 사용처, 지급시기, 지급할 금액 등을 확정했다"며 "이뿐만 아니라 실제로 특활비를 지출하도록 하는 등 회계관계업무에 해당하는 '지출원인행위'와 '지출행위'를 실질적으로 처리했다"고 판시했습니다.
이런 판단은 같은 구조의 범죄사실로 기소된 이명박 전 대통령의 1심 판단과도 유사합니다.
앞서 이 전 대통령의 1심은 국정원장이 회계관계직원이라는 판단에 따라 국고손실죄를 유죄로 인정한 바 있습니다.
이병호 전 국정원장 시절인 2016년 9월 청와대에 건네진 2억원을 두고도 그간 하급심의 판단이 엇갈렸으나, 대법원은 이 돈만큼은 뇌물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대법원은 상납이 중단됐다가 이병호 전 원장이 자발적으로 2억원을 다시 준 경위에 주
아울러 "박 전 대통령과 이병호 전 국정원장은 직무상의 관계에 있을 뿐 2억원을 수수할 정도로 사적인 친분은 없다"며 "국정원장이 인사권자인 대통령에게 자발적으로 거액의 돈을 주는 것은, 대통령의 국정원장에 대한 직무집행에 관해 공정성을 의심받기에 충분하다"고 설명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