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봉하마을은 100만 명이 넘는 추모객이 몰리면서 전 국민의 눈과 귀를 붙잡았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부터 발인 직전까지 봉하마을의 7일간 기록을 이혁준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 기자 】
노 전 대통령이 투신해 사망했다는 비보가 마을에 전해진 것은 지난 23일 아침 9시를 조금 넘긴 시각.
경찰의 사고 경위 조사를 거친 뒤 봉하마을로 노 전 대통령의 유해가 도착한 것은 그 후 반나절이 훨씬 지나서였습니다.
밤 10시가 넘어서야 충격과 슬픔 속에 조문행렬은 시작됐습니다.
이튿날 마을회관 앞에 공식 분향소가 차려졌고, 폭우가 퍼붓는데도 하루 동안 20만 명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정치권 인사들의 조문도 줄을 이었고 일부 인사들은 노사모 등 지지자들에게 막혀 발길을 돌리는 수모를 겪기도 했습니다.
▶ 인터뷰 : 문재인 / 전 청와대 비서실장(5월 24일)
- "조문은 안 되는 것으로 하고요. 돌아가게 해주십시다."
사흘째부터 내리쬐는 뙤약볕 속에서도 밤낮없이 조문 행렬이 이어지면서 인근 5km까지 교통이 마비되다시피 했습니다.
조문 닷새째,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시 경호관이 곁에 없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경찰의 부실 수사가 도마 위에 오릅니다.
▶ 인터뷰 : 이운우 / 경남지방경찰청장(5월27일)
- "경호원이 자리를 비우고 다시 다른 데로 갔다가 확인한 시간이 30분쯤…"
이즈음 마을 입구에는 500개의 만장이 등장했고, 추모 물결은 그 열기를 더해갔습니다.
지난 이레 동안 이곳에는 1,000여 명의 취재진이 몰려 뜨거운 취재 경쟁을 벌였습니다.
조문객들에게 나눠준 소고기 국밥은 하루에만 쌀 125포대가 소비됐고, 소고기도 하루에 황소 한 마리 무게인 800kg씩 들어갔습니다.
국화도 하루 평균 10만 송이가 쓰였지만 몰려드는 조문객을 감당하지 못해 일부가 재활용되기도 했습니다.
봉하마을 주민을 비롯해 전국에서 몰려든 자원봉사자 500여 명이 분향소 곳곳에서 궂은 일을 도왔습니다.
MBN뉴스 이혁준입니다.
< Copyright ⓒ mb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