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 0도 보다 높아도 살얼음 생겨
설 연휴 눈 예보…감속 운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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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4일 발생한 자유로 44중 추돌사고 현장 (연합뉴스, 경기북부소방재난본부) |
지난 1월 14일 새벽, 경기도 고양시 자유로에서 승용차와 트럭, 버스 44대가 추돌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비슷한 시간 서울문산고속도로 고양 분기점 인근에서도 차량 43대가 추돌했고, 흥도IC 인근에서도 18대가 피해를 본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사고 원인으로 아스팔트 도로 표면에 생긴 살얼음 '블랙 아이스'가 지목됐습니다. 사고 발생 전날, 수도권에는 진눈깨비가 내렸습니다. 밤새 기온이 떨어지며 도로 위에 떨어진 눈과 비가 얼음으로 변했고, 이 위를 달리던 자동차가 미끄러지며 연쇄 추돌 사고로 이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설 연휴를 맞아 많은 분이 가족을 만나러 혹은 여행을 떠나러 운전대를 잡으실 겁니다. 안전한 명절이 되기를 바라며 도로 위에 암살자라 불리는 '블랙 아이스'에 대해 취재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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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리/결빙 상태 노면 사망 사고 발생 (TAAS 교통사고분석시스템) |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서리나 빙판이 생긴 도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가운데 사망자가 발생한 사고를 추려봤습니다.
표에서 보는 것처럼 3년 동안 53건의 사고가 발생해 57명이 숨졌습니다. 안타깝게도 매년 19명이 미끄러운 도로에서 발생한 사고로 목숨을 잃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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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리/결빙 노면 사망 사고 발생 당일 날씨 (TAAS 교통사고분석시스템) |
의외인 점은 바로 사고가 일어난 날의 날씨입니다. 전체 사고 발생 건수의 41%인 22건이 맑은 날에 발생했습니다. 눈이 내리거나(12건) 비가 내린 날(4건), 흐린 날(11건)보다 훨씬 많은 수치입니다.
통계가 말해주는 것처럼 블랙 아이스는 눈이나 비가 내리지 않는 날에도 충분히 생길 수 있습니다. 하루나 이틀 전에 내린 눈이나 비가 완전히 증발하지 않고 일부 남아 있다가 기온이 떨어졌을 때 얼어붙을 수 있는 겁니다.
며칠 동안 맑은 날이 이어졌다고 해도 방심하면 안 됩니다. 오래전에 내렸던 눈이 도로 주변에 쌓여 있다가 잠시 기온이 풀렸을 때 녹아서 도로로 흘러왔다 밤새 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대기 중엔 수분이 많은 날엔 공기 속 수분이 차가운 도로 표면과 만나 얼며 빙판길을 만들 수도 있죠.
날씨가 맑다고 방심하고 가속페달을 밟았다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겁니다.
기온이 0도보다 높을 때도 블랙 아이스가 생길 수 있습니다. 가상의 인물 방심 씨의 사례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부지런한 방심 씨는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섭니다. 날씨 앱을 켜 보니 기온이 영상 1도라고 안내합니다. 물은 0도부터 어니까 오늘은 도로가 미끄럽지 않겠지 생각하고 속도를 줄이지 않고 평소처럼 운전합니다. 하지만 고가도로를 지나다 블랙 아이스를 만나고 미끄러져 크게 다칩니다. 방심 씨는 왜 기온이 영상일 때 빙판길을 만난 걸까요?
공기와 아스팔트에 태양광을 쏘아 봅시다. 고체로 된 아스팔트는 공기보다 열을 더 잘 흡수하고 저장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공기보다 더 많이 뜨거워지죠. 여름철 기온이 30도 일 때 도로 표면의 온도가 50도를 훌쩍 뛰어넘는 상황을 떠올려보면 쉽게 와닿을 겁니다.
하지만 밤이 되면 상황이 역전됩니다. 태양이 사라지면 도로는 낮 동안 흡수했던 열을 적외선 형태로 방출합니다. 하지만 공기는 열을 전달해주는 능력인 열전도율이 낮아 도로가 열을 내보내는 만큼 도로에 열을 전달해주지 못합니다. 시간이 흐르면 대기와 도로 온도가 역전됩니다.
방심 씨가 사고가 난 도로 표면 온도는 밤새 열을 많이 방출한 탓에 기온보다 더 낮았습니다. 기온은 앱에 나온 대로 1도이었지만 도로 표면 온도는 0도 아래였고 도로 위 수분은 얼음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이를 몰랐던 탓에 방심 씨는 사고가 난 겁니다.
설 연휴엔 교통사고당 사상자 수가 쑥 올라갑니다. 2019년부터 2023년 5년 동안 교통사고 100건당 사상사 수는 146명이었습니다. 그
내일(27일)부터 전국 곳곳에 비나 눈이 오고, 모레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블랙 아이스가 생기기 딱 좋은 조건이죠. 차 속도를 줄이고 집에 조금 늦게 도착할 결심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 강세현 기자 / accent@mbn.co.kr ]